[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4화) 에세이 '조선소에서'
2년 넘게 다닌 직장서 깨달은 '계급'이 우선인 세상의 처절함

참새는 창원에 사는 작가지망생 황원식 씨의 필명입니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팟캐스트(인터넷 방송)에도 참여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상담센터도 운영하며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2주에 한 번 서평과 에세이가 번갈아 독자를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나는 조선소 경비를 2년 넘게 했다. 개인 시간이 많아 밤에는 자유롭게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월급도 노동에 비해 적지 않았다. 다만, 경비를 보는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경비를 낮게 보는 것일까? 택배 같은 물건 맡아주고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것 이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어서일까? 전문성이 전혀 없는 단순 서비스업이라 그럴까?

조선소에서는 50명이 넘는 경비가 있었는데, 2명 이상 함께 근무하는 때도 잦았다. 같이 일하는 경비들은 대부분 나이가 50대 이상이었다. 대부분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일찍 잘리거나, 사업 실패 등으로 아픔을 겪고 오갈 데 없어 여기로 온 사람들이었다. 가정이 해체된 사람도 많았다. 그들에게 삶은 그저 버티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잘나갔던 80~90년대 이야기를 자주 했다. 삶의 의미가 오로지 '과거'에만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매일 술을 먹었다. 자신의 신세를 잊으려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술 먹는 자신이 싫어서 또 술을 마셨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저속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24시간 내내 들은 적이 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 짙은 무기력이 내게도 전염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조선소는 남자들의 일터다. 쇠를 깎는 매캐한 냄새로, 거친 욕설로 가득 차 있다. 현장에 여자는 거의 없다. 하루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거기에 처음 보는 아가씨가 있었다. 새로 온 영양사라고 했다. 20대로 보였는데, 체구가 아담한 것이 내 이상형이었다. 주위에 온통 거친 남자들뿐이었기에 그녀가 더 빛나 보였다. 어찌 삭막한 내 생활에 오아시스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동료 경비 아저씨가 밥을 먹다가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 한 젊은 경비가 영양사한테 말을 걸었다가 보안실에 끌려간 거 아나? 경비 주제에 정규직한테 말 걸다가 찍힌 거지!"

난 그 말을 듣고 발끈했다. "왜요? 경비는 여자한테 말도 걸면 안 되나요?"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보는 눈도 많은데 직원들이 우리 욕한다. 조심해라 너도!"

충격이었다. 나는 문대를 졸업해서 주위엔 온통 여자들뿐이었다. 그 일상적인 존재들에게 말도 걸면 안 된다니, 너무 서럽다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보면 그녀는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나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경비다. 그녀는 나라는 인간 자체보다 어둔 색채의 경비복, 밥 먹을 때 찍는 빨간색 비정규직 사원증을 먼저 의식할 것이다.

만약 내가 가볍게 말을 걸더라도 대꾸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때야 그녀와 내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걸 인식했다.

나는 세상이 계급사회라는 걸 처절하게 느꼈다. 정규직은 파란색, 우리는 빨간색 사원증을 가지고 다닌다. 빨강과 파랑은 주차장도 다르고, 헬멧도 다르다. 월급도 다르다. 문화도 다르다. 무엇보다 일 이외에는 내외한다. 어느 날, 경비를 관리하는 총무팀 신입 직원이, 그래 봤자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새파랗게 어린놈이 경비들에게 근무 시 주의 사항을 알려줬다. 난 그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매일 술만 먹고, 게으르고 무식한, 도저히 구제가 안 되는 인생 실패자들아. 내 말 잘 들어. 내가 너희 때문에 위에서 조금이라도 깨질 수는 없잖아. 잘리기 싫으면 내가 한번 말할 때 똑바로 들어!' 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경비들이 이런 모욕적인 시선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그들의 요구대로 행동하려는 모습에 더욱 경악했다. 시간이 지나 나 또한 저들처럼 될 거 같았다. 그러기 전에 서둘러 그곳을 탈출했다.

/시민기자 황원식

※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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