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제품·정보 교류하는 '연구 기반'
글로벌 혁신 경쟁 시대의 성공 키워드

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에서 티타늄 소재와 관련한 연구자·교수·기업가 등 200여 명이 모여 기술교류회를 한 적 있다. 마치 시골 5일장 같이 티타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서 기술·제품·시장 정보 등을 교류하는 장(場)이 열린 것이다. 좀 더 거창한 말로 표현하면, 티타늄 소재 '플랫폼'이 하루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플랫폼(Platform)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이라는 뜻이다. 정거장이라는 일정한 공간에 많은 승객이 몰려들 듯이, 플랫폼은 많은 사람이 참여하거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있다. 정거장에는 정해진 노선과 승차권 구입 절차 등이 있고, 플랫폼에는 여러 참여자가 규칙, 제품 사양 혹은 기반시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동활용 속성'이 있다. 또한, 정거장이 거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교통·물류의 중심지가 되듯이, 플랫폼은 비용절감·파생제품 등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하드웨어 혹은 소프트웨어의 '토대나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오늘날에는 교통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플랫폼 개념이 활용되고 있다. 분야마다 플랫폼의 대상과 정의가 약간 다를 수 있지만,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3가지 특성(네트워크, 공동활용, 비용효과적 토대)이 있다.

애플·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고 각종 플랫폼기반 서비스(인터넷 검색, 앱스토어, SNS, 메신저, 온라인쇼핑몰 등)를 자주 접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플랫폼은 익숙한 단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플랫폼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면서, 연구개발자에게도 플랫폼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보통신기술·모바일기기 등 IT 기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IT기술의 제조업·서비스업·농수산업 분야의 연구개발에도 플랫폼에 대한 이해와 활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여러 제품(서비스)에 공통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기반기술 즉, '플랫폼기술' 개발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포드 자동차사는 다양한 차량을 장착할 수 있는 자동차 기본뼈대(플랫폼) T-Model을 개발해 1500만 대 이상의 차를 판매한 바 있다. T-Model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로 기록됐으며, 엄청난 비용절감과 세계 선두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공용화 가능한 플랫폼기술(제품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면, 플랫폼 위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어 파생제품을 생산해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하나의 기술을 둘러싸고 있는 생태계 관점에서 '플랫폼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MP3 플레이어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지만, 애플 아이팟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우리 기업들이 MP3 플레이어 하드웨어 혁신에 집착할 때, 애플은 MP3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구입할 수 있는 아이튠스를 고안했다. 애플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가 서로 연계된 MP3 생태계를 플랫폼화 했고 비로소 시장지배자가 되었다. 이제는 하나의 기술(제품) 개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수요자·매개자 등 생태계 전반을 고려해 플랫폼을 구축하는 포괄적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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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연구개발에 필요한 아이디어·지식·정보·시설 장비 등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혁신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티타늄소재 플랫폼과 같이 조직 안팎의 이해관계자들이 상시적으로 참여하는 장(場)이 필요하다. 혁신플랫폼은 내·외부의 인재들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기술 산업화를 촉진할 수 있는 개방형 혁신의 실질적인 토대이다. 머지않아 연구기관의 경쟁력도 첨단기술 보유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드나드는 혁신플랫폼에서 결정될 수 있다.

더욱 치열해지는 글로벌 혁신경쟁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정부도 플랫폼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상생하는 가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의 비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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