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하늘빛으로 바다는 바닷소리로…

통영시에서 충무교나 통영대교를 지나 들어가는 미륵도는 해안선이 온통 아름답다. 알맞게 솔을 인 채로 바닷물 드나드는 아랫도리로는 메말라 보이는 바위들을 드리고 있다.
바다는 푸르기만 하고 하늘은 좀 더 가벼운 색채로 어울려 준다. 수평선은 얇은 안개로 흐려져서 멀리 떨어져 앉은 섬은 마치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풍화리는 관광 안내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미륵도의 북서쪽 옆구리에서 게의 앞발처럼 서쪽으로 길게 뻗은 풍화리 해안은 이렇게 술래의 눈을 속이듯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미륵도엔 미륵산 용화사나 달아공원만 있는 줄 안다. 물론 남쪽 끝 달아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처럼 툭 트인 맛은 덜하다. 하지만 고기잡이배의 통통거림, 가두리 양식장의 하얀 부표, 굽어서 막힌 듯 이어지는 갯바위들을 여기 말고 달리 눈에 담을 데가 없다.
바다까지 내려온 부드러운 산등성이. 오밀조밀 내려앉은 오비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 가두리 양식장에 쓰인다는 엉성한 가교조차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됐으나 이미 한 풀 벗겨져 너덜거린다. 해란에서 명지로 곧바로 가는 잘 포장된 길은 자동차로 2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질러가는 길을 잡으면 잇달아 펼쳐지는 바다와 마을 풍경의 정겨움을 느낄 수 없다.
길에서 바다로 나 있는 조그만 오솔길 끝에는 낚시꾼이 매달려 있다. 낚시꾼 손에는 낚싯대가 매달려 있고 그 낚싯바늘에는 어쩌면 재수 없는 도다리나 숭어가 걸려들지도 모른다.
옆에서는 아이들과 어머니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플라스틱 병을 들고 오가는 품으로 봐서 바위에 달라붙은 고둥이나 게 따위를 잡는 모양이다. 얼마나 잡았는지 건너다보니 30분 남짓 동안 한 되짜리 병을 거의 채웠다.
아이들과 어울려 즐겁게 한 때를 보낼만한 갯바위는 곳곳에 널려 있다. 전통 숭어잡이를 뜻하는 수월(秀越), 굽은 활의 목덜미에 해당한다는 궁항(弓項), 알을 품은 게의 모양이라는 해란(蟹卵), 따스하게 볕이 드는 동네라는 양화(陽華) 등등에서 대충 길을 잡아 내려가면 어김없이 나온다.
명지 마을 부둣가에는 삼양초교 분교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잔치를 하는 모양인지 운동장 한 켠에는 마실거리와 먹을거리가 잔뜩 놓여 있다. 공을 따라 뛰면서 내지르는 동네 청년들의 고함 소리가 이쪽 갯바위까지 밀려온다.
봄날 갯바위를 오가면서 고둥 따위 잡으려면 땀 깨나 흘리게 돼 있다. 두어 시간 아이들 즐겁게 해 주면 고둥은 절로 수북하게 쌓일 것이다. 돌아와 삶아 먹는 고소한 상상을 하다가 해가 늬엿늬엿 서쪽 하늘에 걸리면 달아공원에 한 번 가 볼 일이다. 서늘한 바람 가운데 지는 해가 아름다운 데가 바로 그곳이다.

△가볼만한 곳 - 산양읍 당포성지

풍화리 바닷가에서 빠져나와 달아공원쪽으로 가면 산양읍 소재지가 나온다. 읍 소재지를 살짝 지나면 왼쪽으로 ‘삼덕사-장군산 성터’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표지판 따라 가다가 절간 들머리에서 멈추면 길 좌우로 늘어서 있는 성곽을 볼 수 있다.
당포성지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최영 장군이 왜구를 막으려고 쌓은 성으로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왜적에게 빼앗겼다가 이순신 장군이 되찾았다. 남쪽 바닷가로 정문을 두었다는데 산마루에 있는 망루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새로 지은 절간인 삼덕사는 낭떠러지에 서 있다. 내려다보면 포구와 마을이 들어온다. 이 성지 아래쪽에는 요즘 보기 드문 민속자료가 몇 있다.
포구 들머리 배롱나무가 짝을 이뤄 서 있는 아래에 돌장승 벅수가 둘 서 있다. 전각 안에 모셔 놓았는데 가슴께에 새끼줄로 무언가 두르고 있어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더니 짐승 뼈다귀였다. 앞에는 과일과 생선 따위가 널려 있었고.
이밖에 장군당에는 갑옷과 투구를 걸친 장군신화가 걸려 있고 앞에는 나무로 만든 용마가 지키고 섰다. 마을을 지키고 풍어를 보장해 주는 신물들인데 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루 자시(子時)부터 천제.장군제.용마제.잡신제.벅수제를 차례대로 지낸다고 한다. 이를테면 유교나 불교 따위에 물들지 않고 마을 공동체의 신앙대상을 섬기는 순수 토속 제사인 셈이다.
또 아이들과 함께라면 오가는 길에 해저터널에 들르는 것도 좋겠다. 여객선 터미널 근처인 당동에서 미수동에 이르는 길이가 461m에 이른다. 평균 깊이가 물 밑 10m라는데 안에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이 들고 소리가 우렁우렁 울린다.
아이들은 투명 유리로 돼 있어서 바깥 바다가 보이는 것으로 지레짐작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전혀 낯선 환경에서 흐릿한 불빛 아래 20~30분 걸려 오가는 재미로 실망감은 충분히 벌충해 줄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진주에서는 33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고성에서 국도 14호선으로 옮겨 타면 되고 창원이나 마산에서는 경남대가 있는 월영동으로 해서 진동을 거쳐 진전에서 국도 2호선과 갈라지는 국도 14호선을 따라간다.
통영 들머리 원문고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시내로 들어온 다음 충무교나 통영대교를 건너면 미륵도. 여기서 다시 우회전해 가면 산양 일주 관광 도로인데, 산양읍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세포 고개의 갈림길에서 1021번 지방도 따라 우회전해야 풍화리에 들어설 수 있다.
풍화리로 접어든 다음에도 갈림길은 또 나온다. 이때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왼쪽은 꼬불꼬불한 바닷가를 피해 마을과 마을을 바로 이어주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해란 마을 있는 쪽으로 접어들어야 풍화리의 바다 풍경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길은 우툴두툴하지만 마을과 바다 갯바위가 어우러지는 경치는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통영에 이르는 대중교통 사정은 좋은 편이다. 마산남부시외버스터미널(247-6395)에서는 통영까지 가는 버스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 55분까지 10분마다 탈 수 있다. 또 진주시외버스터미널(741-6039)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50분까지 15분 간격으로 있다.
통영에서 풍화리 들어가는 시내버스는 통영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탈 수 있다. 오전 5시 34분부터 저녁 10시 30분까지 시간대마다 한 대꼴로 차가 다닌다.
돌아올 때는 국도 14호선을 따르다가 오른쪽 광도.거류로 해서 67번 도로로 이어지는 길을 탈 수도 있다. 진주 가는 이는 고성으로 빠져나가고 마산.창원이 목적지면 죽 이어서 동해.진전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로 달리면 된다. 길은 창포에서 다시 국도 14호선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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