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폭언 버스기사에게 건넨 이어폰
뒤늦게 깨닫고 안전운전 다짐 '보람'

'수선재'라는 공동체마을 탐방을 며칠 앞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버스운전사의 손전화 통화내용이 너무나 거칠어서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의자에 푹 기대앉아 느긋하게 차창 밖 풍경도 봐 가면서 메모를 해 가며 버스로 먼 길을 가는 중이었는데 운전기사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가 사는 동네 이장하고 통화하는 것 같았다. "그 쌍놈의 새끼가 ○○도 놈인데 남의 동네 이사 왔으면 고분고분해야지 그런 놈은 어서 내쫓아야 해."

동네 이장으로 여겨지는 통화 상대편이 뭐라고 이사 온 주민을 해명하는 모양이다. 운전기사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이장이 자꾸 그런 소리 하면 내가 군청에 가서 직접 얘기할 거다"고 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손전화를 연거푸 해댔다. 오는 전화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전화를 여기저기에 걸었다. 이번에는 친목회 모임인가보다. 누구를 잡놈이라 하면서 '죽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늙고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서일까. 경상도 땅이라서 ○○도 고객이 없으리라 여겨서일까. 그래도 그렇지. 손님들의 행색이 어떻든, 승객이 어느 지역 사람이든 장거리 직행버스 기사가 지역 차별 발언을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운전 중 전화통화가 끝날 줄을 모르니 불안하기도 했다.

운전기사 왼쪽 위에는 버젓이 기사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있는 걸 보면 아예 주위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았다. 더구나 운전기사의 오른쪽 위에는 기가 막힌 표어까지 떡하니 붙어 있었다.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과 폭력은 테러입니다'는 것이었다. 실명이 적혀 있고 안전운전을 위한 표어가 있는 자리에서 정작 기사는 과도하게 자유분방했다.

승객이나 기사 자신의 안전을 위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산청 아래 원지 정류장이었다. 내가 먼저 차를 내려서 기사를 내려오라고 했다. 영문을 전혀 모르는 기사는 엉거주춤 버스를 내려오면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이는 60대 초반으로 보였다. 아마 자기가 운전 중에 장시간 전화통화를 했다는 사실마저 모르는 표정이었다.

"종일 장거리 운전하시려면 힘드시죠?"

제법 상냥하게 인사부터 건넸지만 운전사는 오히려 그다음 말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왜 자기를 불러 내렸는지 말이다. 그때 내 손에는 주머니에서 꺼낸 이어폰이 쥐여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1만 5000원 하는 고급이어폰이었다.

"기사님. 손전화가 필수품이라 전화 안 할 수는 없을 테고요. 앞으로는 이 이어폰을 끼고 하세요."

그때야 자초지종을 눈치 챈 기사는 반응이 아주 놀라웠다. 그 어색하고 난감한 표정이 시골소년 같았다. 양손을 쩔쩔 흔들면서 아니라고. 다시는 운전 중에 전화 같은 건 안 하겠단다. 자기도 있다고. 이어폰이 있어도 운전할 때는 전화는 안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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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꺼내 든 이어폰을 다시 내 호주머니에 넣기도 민망해서 기사 손에 쥐여 주었더니 그는 내 손을 잽싸게 뿌리치고는 운전대에 뛰어올라가더니 운전석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서 내려왔다. 내 눈앞에서 자기가 이어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면서 다시는 전화통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공동체마을 탐방 메모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관계를 생각하다 순간적으로 '이 순간도 운전기사와 내가 한 공동체라고 할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을까?'라고 돌이켜보면서 이어폰을 건넨 것인데 값비싼 이어폰도 내 호주머니에 그냥 남게 되었고 다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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