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끼리도 이름 대신 직함 호칭 슬퍼
공정함 사라진 연줄 사회 부패 필연적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여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의 경우 동창회나 향우회·종친회와 같은 사적 연결고리 모임에 나가는 것이 그중 하나다.

누구나 하는 모임들인데 왜 불편을 느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건 바로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매우 사적인 모임이지만 역설적으로 사적 취향과 의지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형님 동생, 선배 후배, 촌수에 얽힌 복잡한 호칭까지 미리 짜인 관계 속에 나를 구겨 넣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몸에 잘 맞지 않는 예복을 억지로 걸치고 나간 기분이랄까.

모임 안에서 서로 불러주는 호칭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연고가 강한 모임일수록 이름 대신 직함 부르길 좋아한다. 힘깨나 쓰는 기관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김 국장, 최 판사, 이 변, 최 기자, 오 닥터 등등. 딱히 부를 직함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특이하게도 '사장'이라는 가짜 직함이 붙는다. 나에게 '서 사장'이라 부른 친구에게 농담 섞어 화들짝 반발하긴 했지만 뒤끝이 그리 개운하진 않았다.

혹자는 나의 이런 반응을 두고 그냥 흘려들으면 될 일을 유난히 까탈스럽다고 타박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유난과 까탈을 부릴 생각이다. 이름 떼어낸 자리에 직함을 붙이는 것이 호칭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취약한 개인주의와 공공에 대한 심각한 사유화가 만든 결과이며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끼리 이름 대신 직함을 부르는 자리에서 묘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한 친구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힘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과 친해진다는 느낌. 권위나 권력을 공유한다는 착각과 허영심 같은. 떨어져 나간 이름과 함께 친구에 대한 추억과 개성까지도 지워진다는 느낌 때문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동창회나 종친회 향우회를 넘어 고위 공무원이나 군대 내 비밀 사조직까지 공공재인 권력에 대한 사유화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씨알도 안 먹힐 순진한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재계와 언론 사법계 학계가 친족 관계를 형성해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을 하고, 재벌 소유 장학재단이 판검사 장학생을 길러내는 일, 돈 법 학문이 카르텔을 형성해 국가를 쥐락펴락하는 게 어제오늘 일인가.

어쩌면 사회 지배층(지도층이 아니라)이 벌이는 사적 관계를 통한 공공의 사유화를 보고, 약자들이 따라하다 보니 오늘날처럼 연고조직 풍년사회가 됐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뿌리 깊은 연고주의 문화는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정치적으로 수구 보수화된다는 문제를 낳는다. 공정한 룰과 경쟁, 그에 따른 합당한 분배보다는 인맥·학맥·출신지에 따라 끌어주고 밀어주는 연줄 사회는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상명하복식 계층사회를 만들고,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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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것은 연고주의 문화에서 약자로 밀려나 있던 사람들이 점점 목소리를 내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움직임을 쉼 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촛불의 힘'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는 연줄과 비밀 사조직에 얽매인 국가를 과감히 개혁해 공공성을 회복하고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국가다운 국가'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

"경고의 말씀도 드리겠습니다. 업무 시간 외에는 이해관계자들과 접촉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십시오. 불가피한 경우에는 반드시 기록을 남기십시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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