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김태훈 지음
철학 없는 스토리텔링
오히려 내부 갈등 낳아
시민 중심성 견인해야

매년 여름 스페인 산골 도시 부뇰에서 열리는 '라 토마티나 축제'는 세계 3대 축제로 불린다.

8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전 11시 축제가 시작되면 마을은 인파에 파묻힌다. 이곳을 찾은 세계 각지 관광객은 동네 주민과 뒤섞여 토마토를 던진다.

한바탕 전투가 끝나면 주민들은 토마토가 낭자한 이들의 몸을 씻겨준다. 관광객이 떠난 마을 안길 청소도 마을 주민 몫이다.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는 부뇰은 인구 1만 명가량의 도시다. 관광 인프라를 보면 '관광도시'라 부르기도 어색한 곳이다.

한국 모텔에 가까운 호텔 한 곳과 여인숙, 민박 수준의 숙소 세 군데가 머물 공간이다.

<시민을 위한 도시 스토레텔링> 책표지./피플파워

서비스 공간 또한 인구 1만 명에 딱 맞는 수준이다. 마을 주민에게 최적화된 경제생태계다.

토마토 축제 기간, 하루 5만 명이 다녀가지만 동네 경제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돈 쓸 데가 없어서다.

그뿐인가. 축제에 쓰이는 토마토는 모두 사온다. 축제가 있기 전에는 건물 전면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비닐로 감싸야 한다.

경제적 이득 없는, 귀찮은 일투성이 축제. 그런데도 부뇰 시민들은 왜 매년 토마토 축제를 여는 걸까?

책 <시민을 위한 도시 스토리텔링> 저자 김태훈은 축제가 재현하는 시간은 '원초적인 시간'이라 설명한다. 또한 '원시 시간의 회복'이기도 하다.

스페인 '라 토나티나 축제' 모습. 세계 3대 축제로 산골도시 부뇰에서 8월마다 열린다./라 토마티나 홈페이지 캡처

"공동체는 성스러운 시간을 일상 속에서 재현하면서 본질적인 정체성을 환기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 성스러운 시간을 세속적인 시간 속에서 재현하는 의식이 바로 축제다. 축제라는 의례의 도움을 받아 일상 속에서 성스러운 때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이다."(201쪽)

저자는 부뇰의 라 토마티나 축제가 연속할 수 있는 까닭을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을 통해 답한다.

뒤르켐은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토템 숭배를 연구한 바 있다. 그는 토템이 단순한 우상이 아니라 공동체가 지닌 핵심 가치를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모여 성스러운 행동을 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이 '집합적인 흥분'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이 흥분이 축제라는 형태로 반복된다는 것. 이로써 구성원은 연대의 정서를 공유하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유지한다.

결국, 라 토마티나 축제는 부뇰 시민을 하나로 잇는 연결고리다. 또한 그 이음매를 더욱 탄탄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면 한국의 축제는 어떠한가? 저자의 말을 빌리면 한국의 도시 축제 대부분은 공동체 구성원이자 축제 주인인 시민을 고려하지 않는다.

축제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가 틀렸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축제는 장식이 아니다. 돈벌이를 위한 도구여서도 안 된다. 축제는 옛날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핵심 가치를 갱신하기 위한 필수 프로그램이어야 한다."(206쪽)

한국의 도시 축제가 빚는 논란과 문제점들은 축제를 '도시 마케팅' 도구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아래에서 글로벌 금융과 다국적 기업을 도시에 유치하고자 벌이는 홍보·프로모션 활동에 가깝다.

스페인 '라 토나티나 축제' 모습. 세계 3대 축제로 산골도시 부뇰에서 8월마다 열린다./라 토마티나 홈페이지 캡처

저자는 인물·시민·공간·시간·축제·문화예술·스포츠·향토기업·향토음식·공동체 미디어 등을 소환한다. 다양한 국내외 사례도 점검한다.

"스토리텔링이 과연 무엇일까?" "스토리텔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도시를 스토리텔링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이다.

이 책이 등장한 배경에는 과도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철학 없이 끓어 넘치는 스토리텔링은 도시 공동체에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이 시민의 삶을 풍요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건물 임대료를 높이는 목적이어선 안 된다는 것.

295쪽, 피플파워,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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