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서 명명한 한자 용어 대부분
빛알·흰색잔별 등 우리말로 교체 필요

인터넷, 웹, 스마트폰, 와이파이, 홈페이지, 사이버, 서브, 빅 데이터, 해커, 인공지능(AI) 등은 요즘 아침마다 신문을 펼치면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단어들인데 대부분 정보통신혁명의 산물로 볼 수 있다.이들 단어에 대해서 사전처럼 정확하게 정의하거나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것 또한 아니어서 큰 거부감 없이 읽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생소한 용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는 문화사적으로 대변혁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의 물결>이나 다니엘 벨의 <제3의 기술 혁명>에서 보듯 이와 같은 혁명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한 언어 또한 급증할 수밖에 없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과 산업혁명 직후에도 새로운 용어가 홍수처럼 쏟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기에는 아직 국제 간 교류나 통행이 극히 제한적이었고 서양문화에 대한 이해나 소통능력 또한 낮았기 때문에 이국의 생소한 문물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17세기 이후 일본은 쇄국정책을 쓰면서도 유일하게 네덜란드(和蘭)를 통해서 유럽의 학술·문화·기술을 '난학(蘭學)'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쓰고 있는 '물리'라는 말도 원래 서양 자연과학의 한 분야인 'Physics'를 그들이 한자어로 번역한 말이다. 19세기 중엽까지 그들은 Physics를 격물, 격치, 궁리, 이학, 격물궁리 등으로 혼용했다. 이에 통일할 필요성을 느낀 정부가 1872년 초등교과서 <물리입문>을 발행한 것을 계기로 물리라는 명칭이 정착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난학자들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유입된 성리학을 배워 상당한 지식을 갖추었던 것 같다. 결국 그들은 서양의 추상적인 개념인 물리학 저술 내용에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읽어내고, 이에 대응되는 말을 찾다가 많은 곡절 끝에 물리라는 이름을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과학기술혁명이 미국에서 완성되어갈 무렵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혁명 또한 미국이 그 중심이었다. 이렇다 보니 근·현대의 큰 변혁기에 생겨난 과학기술용어는 주로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서양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과학기술 용어를 굳이 우리말로 바꾸지 않아도 그들의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대중화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인 중에는 바이링구얼(이중 언어 사용자) 수준으로 서양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서양문화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아졌으며, 무엇보다 새로운 과학기술을 탄생시킨 배경지식도 이제는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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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기술용어에는 한자어가 많다. 이 중에는 중국에서 명명한 경우도 있지만 서양학문을 선점한 일본이 그들 식으로 표현한 한자어가 많다. 이에 한국물리학회 등 여러 학회에서는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 서구어를 쉽고 간결한 우리말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무 낯선 토박이말은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광자(photon)를 '빛 알'로,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을 '보편적 중력'으로, 백색 왜성(white dwarf)을 '흰색 잔별'이나 '하얀 난쟁이 별'로 바꾸는 등 멋진 언어로 재편집된 언어의 발명품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는 수많은 ICT(정보톤신기술) 용어들을 정확하게 우리말로 대응시킬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려는 노력 또한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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