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작은마을 장사익과 노래비로 인연
공연 틀 깨니 모두 어우러진 노래판 돼

십 년 전, 산청 황매산 자락 작은 산마을 둑길 굽은 소나무 아래 찔레꽃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하얀 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 놓아 울었지/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아! 노래하며 울었지//아 찔레꽃처럼 울었지/찔레꽃처럼 춤췄지/찔레꽃처럼 노래했지/당신은 찔레꽃/찔레꽃처럼 울었지/당신은 찔레꽃"

광역친환경단지 지정 축하 공연을 왔던 장사익 씨의 노래를 듣고 찔레꽃에 반한 어떤 이가 그 꽃무더기 옆에 노래비를 세우고 근처 산에서 야생 찔레를 옮겨 심었다. 궁벽한 지리산 산골 마을에 자신의 노래비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금포숲을 찾은 장사익은 고마움의 뜻으로 마을 주민을 상대로 즉석 노래 공연을 벌였다. 뜻밖의 열렬한 호응에 흥이 오른 장사익은 덜컥 약속해 버린다. 해마다 이 둑길에 찔레꽃 필 무렵이면 찾아와 함께 노래판을 벌이겠다고….

그 약속을 들은 마을 사람들과 지역 단체에서 앞다투어 오리길 양쪽 둑에 찔레를 심고 금포숲 주위의 논을 사들여 매립해서 놀이판을 만들었다. 2011년 봄날이 가는 끄트머리 어느 날. 둑에 하얀 옥양목을 널어놓은 듯 찔레꽃이 흐드러진 날. 차황면 실매리 산촌 마을 금포숲에 소리꾼 장사익의 울림이 앞산 뒷산을 흔들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와 목 수술을 했던 작년을 빼고 올해 다섯 번째 공연이다. 아니 공연이라기보다 작은 축제에 가깝다. 마을 주민들은 수육을 삶고 떡을 치고 식혜를 만들어 구경꾼에게 돌리고 공연장과 천막 주점에서는 막걸리·파전을 들고 나른다. 사람들은 잔디밭에 모여 앉거나 무대 앞뒤로 둘러섰다. 막걸릿잔을 든 채 비 내리는 고모령을 따라 부른다. 엿장수의 가위치기 소리가 거슬렸는지 한 곡을 끝낸 장사익의 농에 관객들이 자지러진다.

"아따~ 그 엿장새 가시개 소리가 내 노래 박자보다 더 차지게 딱딱 맞아 떨어징께 내가 노래를 못허겄네여."

어느 곳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야외 공연이다. 자신의 히트곡 찔레꽃을 부르기 전 노래를 만들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상고를 졸업하고 직장을 열다섯 번이나 옮겼음에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던 차에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의 권유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은 꿈이었을 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큰 무대에 서기만 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 기회가 오질 않아 가수의 길을 포기하려 했었다. 

어느 날 모든 걸 접을 작정하고 집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은은하고 달착지근한 향기가 풍겨왔다. 두리번두리번 향기를 찾아보니 아파트 담장에 덩굴장미가 화사하게 한 아름 피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장미에서 나는 향기가 아니었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장미의 향은 밍밍했다. 사익은 아련한 향기를 찾아 덩굴을 뒤졌다. 장미를 헤치고 보니 하얗고 작은 찔레꽃 한 떨기가 덩굴 속에서 나타났다. 향기는 가려 있던 작고 여린 이 찔레꽃이 내뿜고 있었던 것이었다. 배고픈 봄날 들과 산을 가득 채워주던 향기였다. 

123.jpg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는 집으로 돌아가 노래를 지어 불렀다. 노래가 맺은 작은 인연으로 호젓한 산마을에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판을 만들었다. 화려한 조명과 음향을 갖춘 콘서트홀에서 표를 산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공연이 아닌 틀을 깨버린 노래판이었다. 틀을 깨니 모두가 더불어 어우러지게 되었다. 틀을 깨고 모두 어우러진 노래판에 향기 더할 찔레꽃. 우리도 함께 찾아볼거나?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