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미래는 오르지 못할 나무인가요
더 나은 삶 향한 노력에 현실 생각하지 않은 조언 답답하기만

내가 취업준비생인 것이 정말 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멀끔하게 차려입고 월세 낼 돈을 벌러 나설 때는 아니다. 옷깃조차 스쳐본 적 없는 이들에게 '취업 안 되는 요즘 애들'로서 일장연설을 들을 때다. 속으로 욱하는 기분이 치솟아 올라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들을 수밖에 없는 순간 말이다.

"어이구… 왜, 밥은 안 먹고, 그걸로 되겠어?"

쇼핑몰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렵 30분이 조금 안 되도록 주어진 점심시간에 벤치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다. 한 아저씨가 혹시 라이터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말했더니 한 손에 담배를 그대로 꺼내 든 채 마치 나를 걱정하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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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 박람회에 모여든 취업준비생들./연합뉴스

"요즘엔 말이야. 취업이 워낙 어렵다 보니까 대학을 나와도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이 많더라고. 우리 아들내미가 지금 군대에 가 있는데, 전역하면 대학 마치지 말고 돈 되는 일 있으면 얼른 아무 데나 일하러 가라고 하려고. 가서 잘하면 되지! 눈을 낮춰야지 목표만 높아가지곤 아무것도 안 돼."

라이터가 없다는 말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에게 샌드위치 맛이 쓰게 느껴질 정도로 씁쓸한 조언이었다. 아무리 취업준비생 신분이라도 그런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취업에 관해 오가는 여러 가지 말 중에 가장 흔히 듣는 게 '눈높이를 낮추라'는 것이다. 이는 취업을 준비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고단한 취업경쟁을 해소시켜 줄 '천기누설'인 양 유행어가 됐다.

그리고 나 또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심지어 골머리를 앓는 친구에게 똑같이 말해주기까지 했다. 삼 대가 덕을 쌓아야 할 만큼 따내기 어려운 자리에서 몸 썩고 마음 썩어가며 일하다 능력 안 되면 퇴출당하는 곳에 갈 바에 적당히 부모님 집에서 가깝고 월급은 얼마 안 돼도 우직하니 있으면 승진도 하고 베테랑으로 인정해주는, 그런 곳에 가야 사람답게 살 거 아니냐고 말이다.

단언컨대 그런 곳은 없다. 감히 말해보자면, 나의 발전이 우리 기업의 발전이요, 기업의 성장이 국가의 성장이었던 소위 '삼위일체' 고성장 시대는 지났다. 기대와 희생은 '88만 원' 혹은 '무급' 정도의 가치가 됐고 아직 첫 월급을 받아보지도 못한 청년들이 노인 빈곤 해결을 함께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계급은 더 세세하게 갈렸다.

대기업 정규직과 대기업 비정규직에서 중소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까지. '9988(국내 기업의 99%이면서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뜻)'이라는 중소기업에서도 이제는 정직원 대신 '인턴'을 뽑는다. 아르바이트마저도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매뉴얼에 철저하다. 눈을 어디까지 낮추는 게 나답게 살 수 있는 수준일까?

한동안 나는 뭐든 속 시원히 물어볼 수 있는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똑같은 질문을 하고 다녔다.

"우유 배달만 해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유치하고 순진하면서도 치졸한 질문이었다. 근데 잠자리에 들기 전 불을 끄고 천장을 바라보면 정말 그게 궁금했다. 누구는 우유 배달부의 배우자가 공무원이면 가능할 거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누구 하나 자기가 준비하고 있는 분야가 전망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누군가도 직업이 없어질까 걱정했다. 다만, 채용인원이 늘고 주는 게 깜깜이 고용 시장을 촉진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되는 듯하다. 나는 다 같이 힘든 이 지점에서 현실을 알라는 말보다 덜 아프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보다 좀 더 근사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령 세상이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으니 '배우는 방법을 배워라'와 같은 말처럼.

보수와 일상의 균형. 그리고 직업만족도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것은 '행운'에 가까우니 자신이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지 고민할 수 있도록 질문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민기자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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