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3) 양산
부처가 설법한 인도산 닮아 영축산 곳곳에 절·암자 자리
신령이 불도 닦아 붙은 지명 신불산, 억새·공룡능선 매력

영남 알프스는 가을이 제격이다. 영남 알프스 가을 억새밭을 보지 않고는 억새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라는 말까지 있으니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가을이 아니어도 눈 내린 겨울, 초록이 무성한 여름, 철쭉이 수놓는 봄, 어느 계절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싱그러운 초록 평원은 가을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가을 억새밭은 다소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한 해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저녁노을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다소 무겁고 우울한 느낌도 든다. 음악으로 따지면 단조풍이라 하겠다.

반대로 여름철 초원은 다르다. 생동감이 넘치고 활력이 솟아난다. 청명한 하늘 아래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초록 파도를 연상시킨다. 그 바람은 가슴을 열고 들어와 어느새 초록의 피가 되어 몸속에 흐르는 듯하다. 영축산과 신불산 정상 평원에서 느낀 바람이 그랬다.

양산시 하북면·원동면과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에 자리 잡은 영축산(靈鷲山·1081m)은 불교 색채가 짙게 밴 명산이다. 정상의 독수리 부리 모양 큰 바위 때문에 영축산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인도의 산 정상 바위봉우리 그리타쿠타(독수리 바위)를 의역한 한자식 표기다. 영험할 영(靈), 독수리 취(鷲)를 합친 '영취산'으로 표기했지만 불교식 발음 '영축산'으로 읽힌다. 산 아래에는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히는 통도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산자락 곳곳에 암자가 펼쳐져 있다.

영축산에서 만난 다람쥐.

오랫동안 영취산, 취서산, 대석산 등으로 불렸지만 2001년 양산시 요청으로 지금의 영축산으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통도사를 지나 백운암 아래에서 길을 잡아 올랐다. 지도상 능선에 도달하는 가장 짧은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깊은 계곡 숲 속 공기가 싱그럽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속 친구까지 뒤따른다. 등산객이 준 음식에 길든 다람쥐들이 강아지처럼 따라오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노력한다. 가져간 과자를 발아래 놓으니 겁도 없이 채 간다. 잠시 뒤 다람쥐 동네에 소문이 다 났는지 더 많은 놈이 따라온다.

하지만 금세 이들을 거들떠볼 겨를도 없어졌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니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눈썹에 맺힌 땀방울이 하나씩 떨어진다. 지도상 짧은 거리는 그만큼 경사가 가팔랐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거친 숨은 동료와의 대화까지 차단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함박재가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열렸다. 능선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하늘을 향해 경쟁하듯 뾰족하게 솟은 바위가 눈길을 잡는다. 그 자체가 진경산수화다.

영축산 정상에서 내려서서 신불산으로 향하 는 길. 발아래 신불평원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신불산이 우람하게 마주하고 있다./유은상 기자

저 멀리 영축산 정상을 바라보며 2∼3개 작은 고개를 넘자 백팔십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넓디넓은 신불평원(영축평원)이 한껏 팔을 벌려 맞이한다. 신불평원은 영축산 아래에서 신불산까지 연결돼 있으며 그 면적도 3300㎡(약 100만 평)에 이른다.

영축산 정상에서 멀리 시선을 뻗어 본다. 왼쪽으로는 밀양 재약산과 천황산이 높이를 다투고, 앞쪽 신불평원과 신불산은 손에 잡힐 듯하다. 오른쪽 발아래 울산 울주군 언양과 양산 하북면 시가지가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기온이 높고 습한 날이라 시원한 전망을 보장하진 않았다.

그러나 크게 아쉽거나 마음 쓰이지 않았다. 신불산으로 향하는 내내 왼쪽으로 펼쳐진 초록의 향연만으로 충분했다. 이곳 단조고원습지는 복원을 위해 울타리를 쳐놓고 출입을 막고 있다. 정족산 무제치늪(울산 울주군)의 3∼4배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 고산습지로 각종 희귀 동식물이 자랐지만 사람들 등쌀에 생채기를 입었다. 조금씩 복원이 되고 있다지만 아직 다 아물지 않은 듯 보였다.

함박재를 지나 영축산으로 향하는 길에 시원하게 펼쳐진 신불평원을 마주하게 된다. 뒤편 왼쪽이 신불산이며 오른쪽이 영축산 정상이다./유은상 기자

다시 언덕을 넘어서자 듬직한 봉우리가 마주한다. 그 아래로는 나지막한 골짜기가 누워 있다. 신불산과 신불재다. 억새 숲 가운데로 나무 덱이 잘 만들어져 있어 제주도의 어느 오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아래로 한발 한발 내려설수록 바람 세기가 더욱 강해진다. 이곳이 바로 바람길인 모양이다. 온몸을 깨우는 시원한 바람이 마음을 더욱 자유롭게 한다.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으면 바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곧장 능선을 올라 신불산(神佛山·1159m) 정상에 선다.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상북면과 양산시 하북면 경계에 있으며 영남 알프스 영축지맥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신불산은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 하여 붙은 지명이다. 정상은 왕뱅, 왕방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모두 왕봉을 말하는 것으로 정상에 묘를 쓰면 역적이 난다는 말도 전해진다.

신불산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신불 공룡능선이다. 공룡의 등 비늘같이 뾰족뾰족 치솟은 바위능선 위로 구름이 흐르면 거대한 공룡이 꿈틀대는 듯하다. 산악인은 이곳을 신불산 절정으로 꼽기도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산행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다시 신불재로 돌아와 가천마을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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