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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기 산맥 사이로 사람이 스미고 도시가 흐른다

[경남의 산] (13) 양산
양산천과 좌우 영축·원효산맥, 그 품에서 자란 고을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7년 06월 09일 금요일

양산은 부산·울산 연계도시로 성장하면서 도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임야 비율이 무려 75%, 경남 동부에서 가장 산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 제1지류인 양산천이 양산을 남북으로 가르고 있다. 양산천을 가운데 두고 동서 양쪽으로 험준한 산맥이 늘어섰다. 동쪽은 천성산을 중심으로 한 원효산맥, 서쪽은 가지산, 영축산, 신불산 등 영남 알프스 산군(山群)을 포함하는 영축산맥이다. 두 산맥 모두 단층운동 지역에 속해 지각이 충돌해 끊어지고 어긋나면서 형성됐다.

◇양산단층과 영축산맥

영축산맥은 양산단층의 지배 아래 있다. 양산단층은 경북 영덕에서 시작해 경주, 양산, 부산 낙동강 하구까지 170㎞ 정도 이어진다. 지난해 9월 12일 전국을 들썩였던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 바로 이 단층에서 일어났다.

양산단층이 만든 최대 산군이 1000m 이상 고봉 7개로 이뤄진 영남 알프스다. 이 중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이 울산 울주군과 경계를 이루며 양산에 걸쳐있다. 우리나라 3대 사찰 통도사를 품은 영축산은 양산을 대표하는 산 중 하나다.

양산에서 영축산맥은 맑은 날 전망이 기가 막힌 시살등을 지나 오룡산(959m)으로 이어진다. 오룡산은 영남 알프스 최대 골짜기 배내골을 끼고 있다. 산줄기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염수봉(816m)을 일으켰다. 염수(鹽水)는 우리말로 '소금물'인데, 옛날에 산불이 자주 일어나서 주민들이 소금단지 2개를 묻었다 해서 얻은 이름이다.

염수봉에서 남서쪽으로 줄기가 뻗어 매봉산(703m), 금오산(766m), 천태산(631m)이 밀양과 경계를 이루며 낙동강에 떨어진다. 이 중 천태산은 중국 저장성(浙江省·절강성)에 있는 천태산을 닮아 같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염수봉에서 동서로 뻗은 줄기는 오봉산(533m)을 끝으로 낙동강을 만난다.

◇울산단층과 원효산맥

양산천 동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은 원효산맥은 울산단층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영축산맥보다 낮고 경사가 완만한데, 이쪽 산맥이 더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받았기 때문이다. 양산에서 원효산맥은 울산 울주와 경계를 이루는 정족산에서 시작해 천성산을 지나고 부산 금정산에서 낙동강을 만난다.

정족산(鼎足山·748m)은 솥 정(鼎), 발 족(足), 한자 그대로 '솥발산'으로 불렸다. 가마솥을 얹어 놓는 솥발처럼 생겨서 얻은 이름이다. 또는 옛날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잠기지 않은 정상부가 솥발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옛사람들은 영축산맥에 있는 영축산에서 줄기가 뻗어 정족산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천성산(千聖山·921m)은 실질적인 양산의 대표 산이다. 조선시대 대부분 자료에는 원적산(圓寂山)으로 기록됐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현재 천성산 제1봉을 원효산, 제2봉(812m)을 천성산으로 불렀다. 그래서 천성산을 원효산(元曉山)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원효산맥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이후 양산시에서 두 봉우리를 천성산으로 통합했다.

천성산 홍룡사 관음전 옆으로 홍룡폭포가 흘러내리고 있다. /유은상 기자

천성산은 신라 고승 원효대사와 관련이 깊다. 천성(千聖)이란 이름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스님 1000명에게(千)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聖)이 되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 곳곳에 암자가 많은데, 특히 북서쪽 산줄기에 있는 내원사가 유명하다. 원효가 창건했다는 사찰로 지금은 통도사 말사다. 독특하고 고즈넉한 홍룡폭포가 있는 홍룡사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천성산 사찰 중 하나다.

천성산은 정상부에 고산습지 화엄늪과 밀밭늪이 있는데 생태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이와 관련해 2003년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하며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려 하자 내원사 지율 스님이 300일 넘게 단식농성을 하며 환경보호를 주장했다.

◇양산 진산 성황산

양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양산천 동쪽 천성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각각 사적 93, 94, 95호인 북정리, 신기리, 중부동 고분군과 주변에서 나온 유물·유적은 적어도 청동기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동기 이후 낙동강 범람으로 양산천 하류에 질 좋은 들판이 형성되자 본격적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조선시대까지 지금 중부동 일대가 양산 고을의 중심인 읍치였다.

조선 초까지는 천성산이 진산(鎭山·고을을 수호하는 산) 노릇을 했다. 하지만, 천성산 자체는 산세가 넓고 높아 실질적인 진산 기능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성황산 기슭에 북정리·신기리 고분이 자리 잡고 있다. /유은상 기자

유사시에 대피할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적당히 높은 고을 진산은 성황산(城隍山·331m)이었다. 양산시립박물관 뒤편으로 북정리 고분군과 신기리 고분군이 기댄 바로 그 산이다.

성황산은 북산(北山) 또는 서낭산이라고도 불렸다. 서낭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말한다. 정상 주변에 사적 97호 신기리 산성이 있다. 신라시대 낙동강을 통해 경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으려고 쌓았다고 한다.

성황산에서 남쪽으로 바로 보이는 봉우리가 동산(289m)이다. 공교롭게도 동산에도 비슷한 산성이 있다. 사적 98호 북부리 산성이다. 이곳 역시 신라시대에 왜구 침입을 막으려 만든 것이라 하는데 학자들은 두 산성을 동시대 것으로 본다.

현재는 성황산과 동산이란 이름을 거의 쓰지 않는다. 동네 주민에게 그저 산책하기 좋은 뒷산일 뿐이다. 성황산은 북정리, 신기리 고분군을 중심으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북정리 고분군에서 나온 부부총과 금조총 유물이 양산시립박물관에 보기 좋게 전시돼 있으니 이것도 둘러볼 만하다. 북정리 산성이 있는 동산에도 동장산성길이라는 산책로가 마련돼 있어 시민들이 자주 찾는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곳곳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중부동 고분군을 지난다. 정상에는 정자가 있어 양산시청을 포함한 시내가 훤하게 보인다.

동산 입구 계원사에서 바라본 양산 시내 전경. /유은상 기자

[참고 문헌]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국토지리정보원, 2011)

<양산시지>(양산시지 편찬위원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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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