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서 스페인까지 2만 5000㎞ 대장정 '꿈'으로
아들과 '추억 쌓기' 소망 두려움·주변 만류 이겨내

"보통 아빠와 아들은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그 이후로는 함께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죠. 그래서 아들이 사춘기 되기 전에 둘이 함께 여행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고 싶어서 이번에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김해시 삼계동에서 선술집 '스시다다미'를 운영하는 최정환(46) 씨와 그의 아들 지훈(용산초 5학년) 군은 오는 11일 강원도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바이칼호수까지 가서 몽골로 넘어간 뒤에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을 거쳐 유럽을 일주할 예정이다. 약 2만5000km 여정은 변수가 많아서 대략 경로만 정해놓고 현지 사정을 봐서 세부 경로를 정한다는 게 최 씨의 계획이다.

다만 지훈 군이 학년 유급을 하지 않으려면 9월말까지는 우리나라로 돌아와야 한다. 학년 출석일 수의 3분의 2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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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환(사진 왼쪽) 씨가 만든 스티커. 스티커에는 최 씨와 아들 지훈 군 사진과 유라시아 횡단 여행 계획 경로가 표시되어 있다. /최정환 씨 제공

최 씨 부자는 3개월여의 여행을 모터사이클을 타고 할 예정이다. 외국 현지에서 차를 빌려 짧은 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됐고, 국내서 타던 차를 배에 싣고 외국으로 가서 장기간 여행을 하는 이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여행에 나서는 사례는 여전히 흔하지 않다.

더구나 아버지와 미성년자 아들이 모터사이클 한 대로 세계여행에 나선 사례는 아직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200~300km씩 달려도 집 한 채도 보이지 않는 인적 드문 러시아 시베리아 구간을 달리거나, 길이 제대로 없는 몽골 대평원을 달리는 것은 어찌 보면 위험할 수도 있다. 또 해발 4000m 안팎의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넘나드는 구간도 마찬가지다. 중간에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낯선 이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비자 등 행정적 문제로 발이 묶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과 두려움이 "아들과 함께 떠나야겠다"는 최 씨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최 씨는 3년 전부터 모터사이클을 타기 시작했다. 그는 캠핑을 좋아하는데 혼자 다니는 단출한 캠핑을 하기에는 모터사이클만큼 좋은 이동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터사이클에 캠핑 장비를 싣고 다니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모터사이클 캠핑에 한창 재미가 든 최씨는 유라시아 횡단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계획을 들은 지훈 군이 "꼭 아빠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최 씨는 부모로서 아들을 데려갔을 경우 생길 수 있는 갖가지 위험한 상황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최 씨는 고민 끝에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들과 이렇게 긴 여행을 해보겠습니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데는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와 아들을 태우고 다닐 1000cc 모터사이클을 장만하고 비포장길을 달리는 연습도 했다. 최 씨는 모터사이클을 이동수단으로 선택한데 대해 "영화 〈타이타닉〉에서 주인공이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타이타닉 선실 안에 있는 것이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는 여행은 뱃머리에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죠"라고 말했다.

11일 모터사이클을 타고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출발하는 최정환 씨와 그의 아들 지훈 군.

최 씨는 '이륜차타고세계여행'이라는 카페에 가입해 이미 세계 여행을 다녀온 선배 회원들로부터 많은 조언도 들었다.

아들과 함께 간다는 그의 계획에 대해 "너무 위험하다"고 말리는 이들도 있지만 "세계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고, 그곳에도 아이들이 살고 있다. 걱정 말고 떠나라"라고 격려해주는 이들이 많아 큰 힘이 됐다.

지훈 군은 작년 5월에 아버지와 함께 인천 아라뱃길에서 출발해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600여 km를 자전거로 종주했다. 요즘은 주말에 하루 100km씩 김해 인근 지역에서 자전거를 타는 등 나름대로 힘든 여행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랑 오랫동안 떨어져 있게 되는 것도 걱정이고, 아빠가 가게에 없어서 장사가 안될까봐 그것도 걱정"이라는 지훈 군은 "그래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대가 된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최 씨가 꾸리는 짐 속에는 학용품과 바리캉(이발기)이 들어 있다.

외국 현지 주민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지훈 군 또래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학용품을 준비했다. 또 바리캉으로 외국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깍아줄 계획이다.

최 씨는 평소 지훈 군의 머리를 직접 깎아주기 때문에 전문이발사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머리를 예쁘게 깎아줄 만큼은 실력을 갖췄다.

지훈 군에게는 1분 늦게 태어난 쌍둥이 여동생인 수연 양이 있다.

수연 양도 이번 여행을 함께 하고 싶어했지만 모터사이클에 셋이 탈 수 없으니 엄마 김미경(46) 씨와 함께 있기로 했다. 대신 모녀는 둘이 별도로 외국 여행을 하는 것으로 서운함을 달래기로 했다.

최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게 가장 걱정입니다. 차로 하는 여행과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차는 달리는 동안 뒷자리에 누울 수도 있지만 모터사이클은 전혀 그럴 수 없고, 비바람에도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병에 걸리거나 다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염려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안전하게 달리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최 씨와 아들은 10일 김해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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