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번째 현충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참배 모습과 추념사 덕분에 모처럼 국민들이 추모와 애국의 분위기에 한껏 젖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남도민과 창원시민은 도내 추념식 관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을 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에 탄식을 쏟아냈다.

창원시 충혼탑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 참석자들은 헌화대 위에 놓인 위패를 향해 숙연한 마음으로 참배의례를 했다. 그러나 대표 위패의 주인공은 제주4·3항쟁 당시 폭력적인 진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박진경 대령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장교경력까지 있는 인물이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박 대령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회자되다가 2000년대 초반 제주항쟁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던 중 비밀문서를 통해 소상히 밝혀진 바 있다. 박 대령은 미군정 장관 딘 소장의 측근으로 수만 명의 제주 민간인 희생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물로 손꼽혀 왔다.

사실이 알려지자 경남도나 창원시 관계자들의 답은 더 가관이다. 충혼탑이 준공된 1985년 이래 가장 계급이 높아 대표 위패로 계속 세워왔다니 그간 얼마나 무심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경남 출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가운데 장성 출신도 수두룩하건만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담당자들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어이없는 사고로 넘길 일 같지만 이면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소홀히 여겨온 철학과 의식의 빈곤함이 깔려 있다. 지역사 연구야말로 '지역'이란 정체성을 갖추고 역사문화유산을 살려 미래지향적인 좌표를 설정하는 푯대라 할 수 있다.

경남도나 창원시, 지역 대학이나 연구기관 모두 지역사를 등한시하다 보니 곳곳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역사문화적 상징과 인물을 내세워 정책을 포장할 때마다 빈약한 역사의식 때문에 얼마나 낭비가 많았었는지 되새겨본다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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