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자의 가사노동은 특별?
재료 다듬기·설거지라도 도와야

"엄마, 볶음밥 해줘." 아침부터 주문이 들어왔다. 요즘 따라 안 먹는 4살 딸의 주문을 차마 무시할 수 없다. 채소를 볶는데 막내가 다리에 엉겨 붙는다. 겨우 밥을 덖어 한 그릇 담아냈건만 딸은 언제 먹고 싶었느냐는 듯, 몇 숟가락 뜨고 그릇을 밀어낸다. 아오~ 속에 천불이 난다.

<집밥 백선생>, <오늘 뭐 먹지> 등 작년 유행하기 시작했던 요리프로그램은 아직도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화면에서 구수한 냄새가 날 것 같고, 당장 재료를 사러 달려나가고 싶은 비주얼. 그중 압권은 시식이다. 누가 더 맛있게 먹나 대결하는 것처럼 패널들은 먹는다. 감탄사가 이어지고 요리사는 뿌듯하게 지켜본다.

음식을 하다 보면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이 베일 수도 있고, 뜨거운 불에 델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프로그램에서 이런 위험성은 화려한 기술로 대체된다. 요리가 끝난 후의 설거지에 대해선 일절 언급도 없다. 오직 만들고 먹는 즐거움만 있다. 어디서도 요리를 노동의 시각에서 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선 잘 논하지만, 밥 차리는 지겨움은 뒤편이다. 돈은 안 벌 수도 있지만, 밥은 안 먹고살 수 없다. 삼시 세 끼 뭘 먹어야 하나는 고민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햄릿의 고민보다 더 치열하고 지긋지긋하다.

나는 엄마와 같이 3남매를 돌보고 있다. 며칠 전 친정엄마는 등뼈찜을 만들어 놓고 또 고민에 빠졌다. "집에 가선 뭘 좀 해먹나?" 나는 그 고민이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도대체 미래공상 소설에 나오는 하나만 먹으면 포만감이 느껴진다는 그 캡슐은 언제 나오나. 우리는 언제까지 밥의 굴레 속에서 살아야 하나. 같은 가사노동자인 나는 앞날이 캄캄하다.

"이걸 밖에서 사 먹으면 얼마인데…" 하는 말이 있다. 외식할 때와 집에서 직접 요리할 때의 가격 차이를 비교하며 뿌듯해하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 집에서 먹으니 싸고 깨끗하고 얼마나 좋아' 긍정했다. 인건비를 쏙 빼 계산하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때로는 음식을 맛보고 "이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맛이다"라고 찬사를 쏟아내기도 한다. 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맛'이 싫다. 가사노동을 정확한 값으로 매기기 싫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나는 집밥이 좋다. 먹으면 일단 속이 편하고 맛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이 만든 집밥'이 좋다. 오십 평생 밥을 차린 친정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딸이 끓인 라면'이다. 송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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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된장도 팔고 김치도 판다. 전자레인지에 3분 돌리면 끝나는 즉석요리도 많다. 그런데도 엄마는 장을 담그고, 김치를 담근다. 끼니마다 가족들의 건강을 고려해 음식을 만든다. 이만하면 주부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장인이다. 짜장라면만 끓여도 요리사가 되는 아빠와 비교하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아직도 남자의 가사노동은 특별하고 여자의 가사노동은 당연한 일이다.

날씨가 덥다. 가사노동자의 고충이 커지는 시기다. 여름에 뜨거운 불 앞에 서 있는 건 누구나 꺼리는 일이다. 찌개나 국 끓이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니 여름에는 좀 간단히 먹는 게 가사노동자를 도와주는 일이다. 더 좋은 일은 재료를 함께 다듬거나, 요리할 때 생기는 설거지를 거드는 것이다. 평생 먹을 소중한 나의 밥. 그 밥상 차리기를 당연한 듯이 남에게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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