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불편함 '어울림·회상'으로
불쑥불쑥 찾아오는 벌레들 긴장감 주는 재래식 화장실
아슬아슬 '미묘한 동거'서피랑 삶의 색다른 묘미

이 글을 연재하는 이장원 씨는 자칭타칭 '서피랑지기'입니다. 통영 서피랑은 최근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명소입니다. 장원 씨는 개중에서도 유명한 99계단 바로 곁에 삽니다. 원래는 예술 소품 제작·판매, 문화 기획 등을 하는데, 서피랑에 정착한 지금은 통영시 문화해설사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매달 서피랑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글에서 제가 서피랑에 살게 된 사연을 말씀드렸습니다. 서피랑이란 이름도 모르던 제가 진해 군항제 이순신 관련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통영에 오게 됐고, 이후 서피랑에 푹 빠져 결국 서피랑 99계단 바로 옆 낡은 집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지요. 제가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었고, 정말 귀한 인연으로 얻게 된 서피랑공작소였기에 저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서피랑 살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피랑 99계단 옆 서피랑공작소. 낡은 집을 고쳐 쓴 까닭에 처음에는 벌레가 많이 나와 기겁한 적이 많았다.

◇지네야,그만 쫌 나온나!

이렇게 오래되고 허름한 옛날 집에서 산다는 것이 사실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나름 정겨웠고 무엇보다도 서피랑공작소를 얻었다는 것이 꿈만 같아서 하루하루가 즐겁게만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제가 이 집에 익숙해져 갈 때쯤입니다. 아무리 적응을 잘하는 저이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자란 저에게 조금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 아무래도 옛날 집이다 보니까 지네나 커다란 거미 같은 벌레들이 종종 출몰해서 저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어릴 적에 벌레에 대한 정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이후부터는 벌레를 무서워하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집에서 벌레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저에게 굉장히 힘들고 부담스러웠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벌레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습니다. 정말 기분 좋게 자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 뭔가 기척이 있어서 살펴보니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몸을 뒤틀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정말 놀랐지만 그래도 살려 보내고는 잊고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더 큰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거의 죽을 맛이었지요. 그래도 다시 살려주면서 "인자 제발 쫌 그만 온나!"하면서 보내줬습니다.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맙게도 그 이후로는 지네는 안 왔습니다. 대신 집안 곳곳에 숨은 희한하게 생긴 거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네가 더는 찾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요즘 보기 드문 도심 속 푸세식 화장실, 서피랑공작소 벤소(변소) 입구.

◇이것은 변…아니벤소다!

이곳의 생활이 한참이 지났는데도 정말 적응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화장실이었습니다. '스페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서피랑공작소의 화장실은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도심 속 재래식 '벤소(변소)'입니다. 벤소에 갈 때마다 묘한 긴장감과 함께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오르더군요. 어릴 적에 잠시 재래식 벤소가 있었던 집에 살았습니다. 그때는 초등학교 외부 화장실도 재래식이었는데, 사실 그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벤소에 가면 왠지 시커먼 아래쪽에서 손이라도 쑥~하고 올라와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할 것 같아서 무서웠었습니다. 화장실에 갈라치면 늘 긴장되고 무서워서 최대한 안 가려고 참고 또 참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어쩔 수 없이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벤소에 들어가서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수시로 "엄마, 거기 있제?" 확인을 했었지요. 마흔이 넘은 어른이 됐음에도 벤소에서 볼일을 보면 여전히 불안합니다.

요즘 보기 드문 도심 속 푸세식 화장실, 서피랑공작소 벤소(변소).

이렇게 서피랑공작소에 적응해 살면서 만들어지는 생활 속의 이야기들도 지나서 보면 참으로 귀하고 재미난 부분이 많습니다.

이참에 재래식 화장실과 연관있는 자료들을 수집하고 기획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앞으로 서피랑을 방문하시는 많은 분에게 좀 더 다양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피랑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 /시민기자 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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