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도 지음
이야기꾼 해양생물학자
해산물 특징·역사 소개
밥상 즐기는 비법까지

마산 앞바다와 어시장이 있어 매식이나 잔치의 상당 부분을 바다음식, 즉 회가 맡아왔다. 아버지는 친척들 모이는 명절이면 어시장 회부터 준비하셨다. 제비 새끼처럼 받아만 먹던 호시절이 가고 내가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아버지가 분명하게 구분해 준비했던 횟감들이 횟감, 또는 모둠회로 뭉뚱그려졌다. 먹을 줄 알았지 구분할 줄 몰랐던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몇 년 전 인디밴드 노래 제목 같기도 하고 첩보영화 암호 같기도 한 책 한 권이 화제가 됐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두 책 모두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 역작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글솜씨가 빼어나 책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분야에서 수십 년 갈고닦은 경험치가 쌓여 내공이 돼 책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

수십 년 내공을 지닌 전문가는 자연스럽게 문장가도 되고 이야기꾼도 된다.

2013년에 나온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물고기 이야기고,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는 횟집에서 곁가지(스키다시)로 등장하는 조개류와 해산물 이야기다.

물론 전편에서 월별로 다루고도 지면이 부족해 소개하지 못한 생선들이 등장한다. 방어와 삼치, 도루묵, 다금바리, 다랑어, 연어 등등. 책 두 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횟집 선택할 때 생선이 주가 되어야 하는지, 곁가지 해산물이 다양하게 나오는 곳이 좋은지를 두고 고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0여 년 전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를 인용하고,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라고 노래하는 고려 시대 가요 <청산별곡>도 끄집어낸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감상하고, 판소리 여섯 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의 한 대목도 길게 뽑아 올린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꼬막 이야기를 어떻게 지나치겠는가? 김홍도의 풍속화와 현진의 그림에서 찾은 물고기 잡는 장면만 골라 보여주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현장을 찾기 위해 쿠바로 떠나기도 한다.

다양한 인용 거리와 자료들이 있지만 그래도 글의 중심은 현장이고, 그곳에 사람이 있다.

"물고기를 따라다녀야 할 팔자인 수산 전문가에게 현장 조사차 들른 해안 포구와 섬,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은 단순 여행지인 그것과는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여러 해를 사귀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주민들은 느닷없이 연락해도 어제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맞아준다. 서로 뜻밖의 도움을 주고받을 때도 있다. 이렇게 만난 사람과 장소에 관한 사연이 묵어 잘 익은 막걸리처럼 이제 향긋한 이야기가 되어 간다.(273쪽)"

책에 나오는 해산물을 음미하고 저자의 페이스북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에 사는 그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두 술안주로 귀결된다.

저자와 멍게 한 점 초장에 찍어 소주 한 잔 털어 넣으면서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 상상을 하니 절로 침이 고인다.

336쪽, 서해문집, 1만 5000원.

/이정수(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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