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들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참새, 까치, 까마귀, 직박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비둘기 같은 새들은 대체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심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도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때로는 농작물을 해쳐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집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중학교 2학년 때쯤 일이다. 문득 집에서 새를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말을 흉내 낼 줄 아는 앵무새와 십자매가 떠올랐다. 가격을 알아보니 사서 키우기가 만만치 않았다.고민 끝에 야생 새를 업어(?)와서 키워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꿩이나 멧비둘기 둥지 찾아 야산을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그땐 둥지 찾는 목적이 알을 꺼내 오는 데 있었다. 배가 무척이나 고픈 시절이라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찾아다녔던 기억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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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멧비둘기.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꿩은 야생성이 강해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멧비둘기를 선택했다. 중간 정도 큰 멧비둘기 새끼는 콩을 먹여 키우면 된다고 어른들이 일러줬다. 한참을 헤맨 끝에 멧비둘기 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른 새가 없는 틈을 타서 두 마리 모두 집으로 데려왔다. 새집을 만들고 틈나는 대로 먹이를 주며 키웠다. 두 마리 모두 무럭무럭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맨 먼저 멧비둘기 돌보는 일에 열중했다. 그런데 어른 새가 되면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려고 마음먹고 있던 중에 사고가 생겼다. 공부하는 데 전념하느라 먹이 주는 일을 잠시 소홀히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새집을 들여다보는데 멧비둘기가 죽어있었다.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먹이 부족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충격이 컸다. 상심한 나머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 새를 부둥켜안고 뒷동산으로 향했다. 양지바른 언덕을 찾아 흙을 파고 고이 묻어준 후 무덤 위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주었다. 서부 영화에 나왔던 장면을 흉내 냈던 거였다. 그 무렵부터 생명을 함부로 다루면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생겨났던 듯하다. 새를 사랑하는 마음도 어렴풋이 생겼다. 멧비둘기 죽음 사건은 훗날 새를 관찰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새들의 서식처를 보호하는 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멧비둘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뒷산 언저리 부근에 둥지를 짓는다. 주로 나지막한 소나무 가지 위에 엉성하게 집을 만든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알이 떨어질 것같이 아슬아슬한 둥지들도 보인다. 알은 딱 두 개만 놓는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아이들에게는 멧비둘기 고기를 먹이지 않았다. 멧비둘기처럼 아이를 둘 밖에 못 낳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형제자매가 보통 넷 정도였던 시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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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비둘기.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멧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자 사랑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구구대며 우는 부부 새의 모습에 다정함이 듬뿍 묻어나기도 한다. 멧비둘기 어미 새는 새끼들에게 아주 특별한 이유식을 먹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어날 때는 노란 깃털이었다가 크면서 어미 새와 같은 깃털로 바꾸게 되는데 노란 깃털 시기에는 포유류의 젓과 비슷한 액체를 토해내서 먹이는 것이다. 어른들이 멧비둘기 어린 새끼는 키우기 어렵다는 말을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암수 모두 이런 특별 이유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정성스러운지를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멧비둘기는 콩과 같은 식물성 씨앗을 좋아하는 새다. 다른 새들은 잠자리나 애벌레 같은 동물성 단백질을 주된 먹이로 하는 데 비해 멧비둘기는 일생 다양한 씨앗 종류를 먹이원으로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새들은 곤충이나 애벌레가 많이 나오는 여름철에 번식하는 반면에 멧비둘기는 겨울이 끝나가는 2월쯤부터 번식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두 개의 알에서 태어난 새끼가 어른 새가 되면 곧바로 번식하게 된다. 아주 추운 겨울철만 제외하면 일 년 내내 번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 밭이나 논에서 무리 지어 먹이를 찾는 멧비둘기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가 바로 번식 특성에 있었던 것이다.

멧비둘기는 연중 대여섯 차례에 걸쳐 두 개의 알을 낳는다. 그리고 첫째 배의 알이 부화하고 나면 새끼 기르는 일은 수컷에게 맡기고 암컷은 둘째 배의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장 속도도 빨라 새끼들도 금방 크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한 쌍으로 시작한 멧비둘기 부부는 1년에 50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멧비둘기보다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새가 집비둘기들이다. 집비둘기는 주로 도시의 공원이나 광장 그리고 운동장 같은 곳에 수십 수백 마리씩 무리 지어 살아간다. 집비둘기의 조상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중국까지 널리 분포하는 들비둘기다. 기원전 4,000년 경부터 사육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식용, 관상용, 경기용 등으로 용도에 맞춰 개량되어왔다. 현대에 와서는 500종류나 되는 다양한 종류의 집비둘기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집비둘기 중에 전서구라는 품종이 있다. 서한을 전하는 비둘기란 뜻이다. 동물들 중에는 유독 귀소본능이 강한 종류가 있다. 연어, 바다거북, 제비, 꿀벌, 집비둘기 등이 대표적인데 집비둘기는 특별한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다.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전서구가 가진 귀소본능을 이용해 편지를 전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에 이미 통신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대 그리스에서도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전서구를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10만 마리에 이르는 집비둘기가 이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20만 마리 이상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전서구는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날아갈 수 있는데 하루에 1,000km까지 계속 날 수 있다고 한다. 속도도 무척 빠른 편인데 시속 80~100km까지 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수치상으로 계산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4~5시간 정도 걸린다. 통신 수단이 발달한 현대에는 경기용으로 이용하는 전서구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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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비둘기.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멧비둘기와 집비둘기 모두 시력이 대단히 뛰어난 새다. 또 양 눈의 위치가 340도까지 살필 수 있어서 높이 날아오르면 사방 40km 이상의 시야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시력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아주 좋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사람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새 중 하나다. 그래서 집비둘기가 먹이를 주는 사람을 기억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전서구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정확하게 자신이 살던 동네 집으로 찾아오는 비결은 뛰어난 시력과 냄새 감각, 기억력 등에 있었던 것이다.

집비둘기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성질이 온순해서 옛날부터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축제 때나 행사 때 많은 집비둘기를 일시에 날려 보내는 의식을 치루기도 했던 것이다. 근처 공원에 가면 무리 지어 있는 집비둘기를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도시 환경에 적응한 집비둘기를 만날 수 있다.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서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때도 있는 집비둘기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 문제다. 최근에는 집비둘기 배설물에서 피부병과 호흡기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이 검출되는 바람에 소탕 작전까지 감행하는 일이 생겼다. 수백 마리가 떼 지어 제분 공장을 급습하는 집비둘기도 있고, 문화재로 지정된 소중한 건축물을 배설물로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집비둘기 배설물로 인한 피해가 연간 11억 달러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던 집비둘기가 애물단지 새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집비둘기 증가를 막기 위해 대량 포획과 불임제 투약 같은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억제시키기가 쉽진 않은 모양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위적으로 먹이를 주지 않는 방법인데 그래도 한때 사람들 사랑을 듬뿍 받았던 비둘기들이라 사람들이 모질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곤란함이 따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비둘기는 시인 김광섭의 시에 등장하는 '성북동 비둘기'다. 가만히 시를 음미해 보며 한때는 고마운 비둘기였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사람과 비둘기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도 생각해 본다.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採石場) 포성(砲聲)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九孔炭)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平和)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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