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끼와 개성 살려 멋진 영화·연극인으로 키워나갈 것"

대안학교. 제도권 교육에서는 배우지 못 하는, 개인적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으려는 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학교. 2017년 개교한 밀양영화고등학교는 영화·연극 예술인 육성이라는 목표로 신설된 공립 대안학교다. 한 학년에 30명, 두 반의 '작은 학교'인 밀양영화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맞는 1:1 맞춤형 교육을 추구한다.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다양성 교육'이야 말로 밀양영화고등학교가 지향하는 바다. 2017년 새로운 시작을 맞은 밀양영화고등학교의 초대 교장인 박치갑(57) 교장을 만나 밀양영화고등학교에 대해 속속들이 물었다.

밀양시 상남면 평촌리에 위치한 밀양영화고등학교(이하 영화고)는 2015년 폐교된 상남중학교를 증·개축한 본관과 신설한 기숙사 건물이 있다. 90명까지 수용 가능한 규모의 기숙사는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클래퍼보드'처럼 생겼다. 한눈에 영화고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 있는 기숙사 건물은 한 폭의 그림 같다.

기숙사 맞은편에 있는 학교 본관의 교장실을 찾아 박 교장을 만났다. 경남 고성 출신이라는 박 교장은 김해한얼중학교, 경남삼성중학교 교감을 지낸 뒤 영화고로 자원해 왔다. 물리를 담당한 과학 선생님임과 동시에 학교 방송의 촬영, 편집 업무를 주로 맡았다고 하는데, 영화고로 오게 된 배경 중 하나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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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치갑 밀양영화고등학교 교장. / 이종현 기자

도내 최초의 첫 공립 기숙형 학교

2002년 첫 공립 대안학교의 신설 이후, 조금씩 늘어난 대안학교이지만 아직 생소한 감이 없잖아 있다. 먼저 대안학교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독자들이 읽기에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부터 대안학교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대안학교는 학업을 중단하거나 개인적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으려는 학생을 대상으로 일반교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을 하는 학교입니다. 영화고는 후자의 경우죠. '심미적인 감성과 창의적인 상상력을 갖춘 영상예술인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연극·영화에 관심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는 대안학교입니다."

기숙형 학교인 것 역시 영화고의 특성 때문이다. 경남 도내 각지에서 연극·영화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영화고를 찾기에 기숙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하다. 실제로 이번에 입학한 학생 30명은 창원·김해·진주·통영·밀양·사천·창녕·하동·함양에서 온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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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퍼 보드를 연상시키는 밀양영화고등학교 기숙사. / 이종현 기자

"거리상의 문제도 있지만,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기숙형으로 설립됐습니다. 좋은 연극·영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서로 간에 호흡을 맞추거나 현장 경험 등을 위해서는 기숙사 체재가 적합하다는 판단이었을 겁니다."

기숙사 내부에는 공부를 위한 독서실뿐만 아니라 러닝머신 등이 있는 헬스장에 세탁실, 샤워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노래방 등이 갖춰져 있다. 계단 한편에 놓여 있는 자전거도 눈에 띈다.

"생활과 학업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는 개교를 기념해 학생들 개개인에게 준 겁니다."

문화의 도시에 자리 잡은 대안학교, 영화고

영화고는 경남교육청 박종훈 교육감의 지휘 아래 신설된 학교다. 경남 지역 내 폐교된 학교를 활용한 데서 폐교된 시설을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같은 시기에 개교한 고성음악고등학교와 같이 문화·예술 분야의 맞춤형 교육이 특징이다.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와 달리 설립기준이나 교육과정, 수업연한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교육과정이 일반 학교와 다릅니다. 대안학교의 교육과정은 특성화고등학교와 비슷한데요. 영화고의 경우 연극·영화 중심의 체험학습을 주요 교육과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일반교과 96단위, 창의적 체험 활동 24단위, 연극·영화 중점 84단위인 총 204단위를 이수하게 됩니다."

새로 개교한 학교다. 거기에 일반고교가 아닌 '대안학교'이기에 교사 모집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지원해서 왔습니다. 연극·영화 분야는 교사 자격증이 있는 두 분을 전문교사로 모셨습니다."

영화 전문 고등학교임에도 일반교과 비중(96단위)이 연극·영화의 비중(84단위)보다 많다. 일반교과에 더 비중을 둔 것도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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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 내 체력단련장, 독서실. / 이종현 기자

"영화고인 만큼 일반고교 수준으로 일반교과에 집중하지는 않겠지만, 일반교과에 많은 비중을 뒀습니다. 특히 국어 시간이 많은데요. 예술 활동을 위해선 국어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적인 독해력도 그렇지만, 국어 시간을 통해 접하는 문학 작품들에도 영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연극·영화는 종합예술입니다. 기본적인 수준의 인문학과 자연학을 갖춰야 작품에도 깊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박 교장은 학교가 밀양에 자리 잡은 이유도 설명했다.

"우선 밀양을 무대로 한 영화 <밀양>이 있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유명한, 밀양을 연극·영화의 도시로 만든 밀양 연극촌도 있습니다. 부산과도 인접해 있어서 부산 국제 영화제 같은 각종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고요. 밀양은 경남에서 연극·영화를 배우기엔 최고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학교'로 연극·영화 분야 전문성 강화

아무리 인문학, 자연학적인 지식이 도움이 된다곤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연극·영화인으로의 전문성이다. 시도는 좋지만 84단위 수업으로 전문적인 연극·영화 역량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연극·영화 전문성 강화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생긴다.

"정규 교육 과정인 84단위로는 전문성을 가지기 어렵지 않냐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할 활동들도 구상해뒀습니다. 교육 과정 내에 동아리 활동, 일과 후 자율 동아리 활동 등입니다. 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장려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방과 후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외부 강사로 초빙하려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주기적인 외부 체험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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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영화 수업 중인 영화고 학생들. / 이종현 기자

박 교장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방과 후 시간에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연극·영화에 친숙해지도록 돕겠다고 한다. 애당초 일반교과처럼 장시간 책상에 앉아 암기하는 분야가 아니기에 학생들이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의 끼와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학교 정원이 적다는 것도 연극·영화 교육에선 좋은 점입니다. 한 학급에 15명씩, 두 개 반 30명의 학생을 모집했는데요. 학생이 많지 않은 만큼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개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한 거죠. 앞으로도 한 학년에 두 개 반, 정원 30명의 학생을 모집해,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교육을 실천하겠습니다."

학생들의 끼와 개성을 살리는 게 목표

박 교장과 인터뷰하는 내내 느낀 감상은 '교장 선생님 같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교장 선생님을 이렇다' 같은 건 없을 터다. 하지만 '교장'이라는 직함에 약간의 고루함과 불편함, 어려움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 교장은 막 교직에 뛰어든 젊은 교사 못지않게 활기찼고, 학생들의 입장에 선 목소릴 냈다.

"연극·영화를 해나갈 학생들에게는, 학생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끼와 개성이야말로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를 소중히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교복이 없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복장에서부터 자유로움을 줘, 각자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자율복장으로 유지할 생각입니다."

복장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두발에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다. 여학생들에게는 일정 수준의 화장도 허용한다는데, 공립학교치곤 무척 파격적이다.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합니다. 화장도 못 하도록 규제하기보다는, 스스로 화장을 해보면서 익숙해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 자율에 맡기면 과한, 학생답지 않은 모습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님들과 소통하며 적정선을 잘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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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치갑 밀양영화고등학교 교장. / 이종현 기자

그러면서도 교복이 없어 아쉬운 부분도 있다는 박 교장. 교복은 아니더라도 영화고의 학생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준비할 거라고 한다.

"개성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교복이 없다는 게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교복이 없으니 교외 체험 활동을 나갈 때도 영화고임을 알릴 수단이 없다는 점은 참 아쉽죠. 학생들의 단합을 위해서, 그리고 학교 홍보를 위해서도 학교 로고가 있는 조끼 같은 걸 만들려고 합니다. 최소한의 통일성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화고는 학칙도 학생,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 이후의 학칙, 세부규정 변경도 학생들과의 소통 시간인 '공동체 학생회의'에서 변경할 수 있다.

"개교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기본적인 시설은 다 갖춰졌지만, 학생들을 위해 더 많이 준비하고픈 게 교사의 욕심 아니겠습니까. 3층에 소극장이 마련돼 있기는 한데, 앞으로 학생들이 더 늘어나고. 또 관객도 모시기에는 좁습니다. 기존 폐교의 체육관을 공연을 위한 무대로 개조하고, 촬영을 겸할 수 있는 극장으로 꾸밀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학생들의 미래

학생들의 진로와 취업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이제 막 1학년이 된 고교생들에게 진학과 취업 얘길 꺼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당면한 현실을 보면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문제다.

"우선 학생들 모두와 개별 면담을 했습니다. 30명의 학생 모두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있더군요. 모두 연극영화 관련 학과 진학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모두가 모이는 캠핑을 열었고, 그 자리서 대학 진학에 대한 설명해 드렸습니다.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 연극영화과의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이라는 것을요. 물론 불가능하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상황을 인식하고, 목표를 위해 힘내자고 했습니다. 학교 차원에서도 전국의 모든 대학을 분석하고 있고, 주기적으로 학생들과 진로에 대한 논의도 할 예정입니다. 각 대학 탐방 및 업무협약 체결로 진학에 도움을 주는 등,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말을 잇던 박 교장은 일반교과 비중이 높은 교육 과정의 또 다른 이유도 설명했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학생을 위해 무엇이 더 나은가를 고민해야 하죠. 영화고로 진학했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연극·영화 분야로 진출할지는 모릅니다. 당장의 꿈을 위해 이 영화고로 진학했다곤 하지만, 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는 게 학생들의 권리 아니겠습니까. 학생이 다른 길을 가고 싶다면 그걸 응원하고 도와주는 게 저와 학교의 역할일 겁니다. 연극·영화를 위해 일반교과가 필요하다는 건 진심입니다. 하지만 이 학생들에게 여러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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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고 기숙사 내부. / 이종현 기자

영화고가 개교하고 초대 교장이 된 박치갑 교장. 의욕 충만한 이 교장 선생님은 앞으로 영화고를 어떤 학교로 만들고 싶을까.

"영화고가 명문고로 거듭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학생들이 능력을 갈고닦아 각자의 꿈을 이루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는 학교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겐 오고 싶은 학교, 학부모님들에겐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가 되겠습니다."

이제 시작이다. 올해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하는 건 2020년. 벌써부터 결과를 예견하는 건 섣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의에 찬 박 교장, 그리고 웃으며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에선 밝은 미래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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