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무장갑

손가락 사이에 습진이 생겼어. 인정하기 싫지만 주부습진인가 봐.

아내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라네.

남자 자존심이 있지 맨손으로 했어. 사나이잖아.

이런 장면에서 딸은 빠지지 않아.


"아빠, 그런데 고무장갑이 남자 자존심과 무슨 상관이야?"


꽤 날카로웠어. 하지만, 여기서 유머 포인트는 따로 있잖아.

어차피 설거지를 하면서 남자 자존심 운운하는 거.

물론 딸에게는 어렵겠지만.

 

"그리고 요즘은 왜 고무장갑 써?"

 

2연타인가? 딸은 아빠 허세가 영 별로인가 봐.

어쨌든 손가락 끝에 화상 때문에 물집이 생겼거든.

자존심이고 뭐고 물이 닿으니까 아프잖아.

그나저나 분홍색 말고 다른 고무장갑 없나? 흰색도 팔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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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술

때맞춰 라면을 끓이는 아빠 뒤에는

어느새 딸이 그림자처럼 붙기 마련이야.

우리 집은 그렇더라고.

 

그냥 끓여도 되는데 기술을 좀 썼어.

냄비를 기울여 긴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젓고 들었다 놓았지.

여자는 비주얼에 약하다면서?

 

"아빠, 많은 요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렇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아무 내용도 없는 이 대화가 아빠 귀에는 이렇게 들려.

 

"우왕! 라면이다. 다 돼가요? 빨리 먹고 싶다!"

 

큰 그릇에 면을 먼저 옮기고 달걀을 풀어 면과 잘 비볐어.

그 위에 끓고 있는 국물을 부어 달걀이 실처럼 익으면서 풀어져 올라오게 했지.

모두 딸을 위한 퍼포먼스야. 내가 먹을 때는 그렇게 안 먹거든.

 

딸 눈에서 별이 반짝반짝하는 것을 보고 또 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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