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비주류들도 사회에서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 집 건너 카페'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부터 소규모 테이크아웃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엔 '카페 거리'까지 조성돼 있다. 포화상태를 넘어 무한출혈경쟁에 접어든 카페 시장. 이런 상황에서 경남대학교 인근에 이색적인 카페가 등장했다. 바로 '버스텀이노르'다. 3층으로 돼 있는 버스텀이노르의 건물 외관은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웅장하다. 마치 화려한 성안으로 들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버스텀이노르의 백미는 화려한 조명과 세련된 디자인의 테이블로 꾸며진 3층 '루프탑'이다. 카페를 넘어서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는 버스텀이노르. 이 카페를 기획하고 현실로 옮긴 김강 버스텀이노르 대표를 만나봤다.

사람들의 꿈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김 대표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우연히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부모님이 극구 반대를 하셨어요. 거기에 제가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복지를 전공했습니다. 방황도 하고 어두웠던 시절이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중요한 과정이었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생각을 정리했던 시간이었죠."

123.jpg
▲ 김강 버스텀이노르 대표. /박성훈 기자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단순한 사무 업무에 지쳐가던 김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계획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선정해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그 일도 보람차고 행복한 일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사회복지를 조금 더 재밌고 유쾌하게 할 순 없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더라고요.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고민은 계속됐죠. 우연히 의상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사촌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때부터 사촌과 'MASSAN 프로젝트'라는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닌 '청년들의 꿈' 더 나아가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 시간들이 지금의 버스텀이노르를 탄생시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주류들의 반란

버스텀이노르.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특이하다'였다. 뜻이 있는 단어도 아니었고 선뜻 무언가를 유추하기도 힘들었다. 단지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어서 이렇게 정했나?'라고 의심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카페를 2년 정도 준비했는데 이름은 얼마 전에 정해졌습니다. 그만큼 공을 들이고 많은 고민을 했죠. 첫 번째로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으니까 그 단어를 활용해보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방향을 담고 싶었어요. 이 두 가지를 조합해 'BUSTERMINOR'란 단어를 완성했죠.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 뜻이 없지만 'BUSTER'와 'MINOR'로 나누면 마이너들의 반란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또 버스터미널과 발음이나 운율도 비슷해서 만장일치로 결정됐습니다."

123.jpg
▲ 버스텀이노르 1층(왼쪽)과 2층(오른쪽)의 모습. / 박성훈 기자

"마이너들의 반란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있습니다. 한글로 해석하면 '비주류들의 반란'이란 뜻인데요. 앞서 말했던 의상디자이너를 하던 사촌이 버스텀이노르를 하기 전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옷을 만들어도 본인 이름이 아닌 유명 디자이너 이름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또 바리스타를 하는 친구는 대기업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점장으로까지 일했는데 정해진 레시피대로 만들어야 하죠. 개인의 역량과 실력은 중요하지 않아요.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마이너잖아요. 우리 같은 비주류들도 사회에서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처럼 재밌고 유쾌하게 사회복지를 하고 싶었던 김 대표의 꿈은, 의상디자이너와 바리스타를 만나 버스텀이노르로 실현됐다. 작년 9월에 문을 연 버스텀이노르는 1층은 의류 편집샵, 2층은 카페, 3층은 루프탑으로 나눠져 있다.

"제가 대표지만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단 한 개도 없어요. 어떤 결정이든 3명이 회의를 한 후에 진행합니다. 1층에선 옷과 잡화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든 상품이죠. 아시다시피 아무리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들은 판매할 공간조차 확보하기 힘듭니다. 그 공간을 버스텀이노르가 대신하겠다는 거죠. 신진 디자이너들은 본인이 만든 상품을 판매할 수 있어서 좋고 저희는 그들의 꿈을 도울 수 있어서 행복하죠."

외관도 화려했지만 내부는 더 특이했다. 카페라고 보기엔 화려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카페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상의하면서 '유행을 타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클래식'에 대한 동경이라고 해야 하나? 변하지 않는 가치, 무슨 일이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변칙을 준 요소들도 곳곳에 있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이 고전적인 유럽풍이라면 카페 한쪽은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디자인을 접목시켰고, 70년대 미국 거리를 연상케 하는 방도 만들었죠. 고전과 현대를 함께 녹여내는 노력을 했습니다."

지역사회활동·이벤트·복합문화공간

8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김 대표는 오프라인, 온라인 가리지 않고 지역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우선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느낀 점도 다를 겁니다. 바리스타인 친구는 음료에 대한 칭찬이 가장 좋을 것이고 의상디자이너는 당연히 옷에 대한 칭찬이겠죠? 저는 고객들이 버스텀이노르를 칭찬하며 웃어주는 거? 매일 가게로 와주시는 어르신이 한 분 계십니다. 항상 환한 웃음과 함께 '젊은 친구들이 고생한다'는 말씀을 해 주세요.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고객들의 웃음, 정말 그거 하나면 됩니다."

이와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 이 물음에 김 대표는 딱 한 마디로 대신했다.

"사업은 항상 힘듭니다. 언제나 힘든 일로 가득 차 있죠. 그래도 이겨내야죠."

321.jpg
▲ 버스텀이노르 루프탑. / 박성훈 기자

최근 19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버스텀이노르는 '투표 독려 이벤트'를 진행했다. 투표 인증을 해오는 고객에게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투표는 독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권도 내 권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기권도 투표장에 가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커피를 사고파는 행위도 정치와 연관돼 있죠. 그래서 '정치에 무관심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마라'고 끊임없이 주장합니다. 물론 언젠가는 독려 이벤트를 안 하는 시대가 와야겠죠?"

또 열악한 환경에서 노래하는 지역 인디뮤지션들에게 공연 장소도 제공하고 있다.

"비주류들의 반란이잖아요. 인디뮤지션들도 본인들의 노래를 알리고 싶고 뽐내고 싶지만 기회가 없죠. 또 일부 사람들이 시끄럽다며 공연을 중단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기회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 친구들은 기회를 얻고 고객들은 문화활동을 할 수 있고 저희도 행복하고, 1석 3조 아닐까요?"

김 대표에게 다른 카페와 차별점이 있는지 물었다.

"우선 1층이 카페가 아닌 것부터 차별화된다고 볼 수 있죠. 또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는 점? 물론 기본은 카페이기 때문에 음료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음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바리스타인 친구는 휴일도 없이 연구합니다. 고객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더 나아가 복지관과 연계한 사업, 직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도 구상 중이다.

"지금까지 공격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었어요. 주위에 같은 업종이 너무 많고 흐름이란 게 있으니까요. 기획만 하고 묶어 놓고 있는 사업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건 복지관과 연계한 '쿠폰환원정책'이란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쿠폰을 찍잖아요. 저희에게 쿠폰을 주시면 커피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복지관에 기부하는 거죠. 또 '넷이 식당'이란 것도 있습니다. 테이블에 버스텀이노르 직원 2명과 고객 2명이 무작위로 앉아서 밥을 먹는 거죠. 시민들과 함께하는 나름의 사회적 활동이죠. 하루빨리 사업을 진행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아요. 2017년 9월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지킬 건 지키면서

치열한 상황에도 카페업종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른 업종보다 운영이 편하고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일 터. 이처럼 카페를 준비하는 예비창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애매한 생각으로 또는 간절한 마음 없이 카페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카페는 것이 간절한 꿈이자 목표입니다. 평생을 바쳐 일하고 싶은 삶의 터전이며 공간이죠. '카페나 해볼까'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임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굉장한 모욕이에요. 정말 이 일을 사랑하고 확신이 섰을 때,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123.jpg
▲ 버스텀이노르 외관. / 박성훈 기자

인터뷰 내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버스텀이노르를 찾았다. 누군가는 수다를 떨고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놓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김 대표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사장님들이 알바생들에게 지킬 건 지켜가면서 장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사장이 조금 덜 가지더라도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더 나눠주는 게 맞는 겁니다. 아니면 최소한의 노동법은 준수해야죠. 그것조차도 지키지 않고 장사를 하는 것은 착취죠. 저희는 지금도 회식을 한다고 공지하면 예전에 일했던 알바생들까지 다 모입니다. 결코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지킬 건 지키고. 그래야 사장도 알바생도, 나아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겠죠?"

123.jpg
▲ 김강 버스텀이노르 대표. / 박성훈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