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뒷산 88코스 알리기 "앞으로 30년 동안 해 나갈 일"

유정민(50) 대표는 소박한 사람이다. 그는 동네 뒷산, 도서관, 목욕탕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유 대표는 11년 동안 동네 뒷산을 제집처럼 다녔다. 그 결실로 올해 4월 창원시를 품고 있는 산속 숲길을 소개하는 책을 펴냈다. 그가 소개하는 코스는 무려 88가지다. 유 대표는 '이프네이처(If Nature)'라는 이름을 짓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시작했다. 바로 사람들이 자연과 친해지게 하는 것. 유 대표는 이 일을 30년 동안 해 나가겠노라 말했다. 

술·담배 끊고 나니 동네 뒷산이 보였다

유 대표의 고향은 부산이다. 창원과의 인연은 대학생 때부터였다. 그는 창원대 산업공학과를 나왔다. 대학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탄탄한 직장에 취직했고 결혼하고 아이도 생겼다. 그 후 30년 동안 쭉 창원에서 살았다.

"대우중공업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어요. 창원 2공장에서 17년 가까이 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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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민 이프네이처 대표. /서정인 기자

생산관리 파트에서 오랫동안 일했다는 그의 예전 모습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지금 모습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편안한 표정의 지금과 달리 그 시절의 유 대표는 치열하게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몸 생각지 않고 스트레스는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걸로 풀었다. 어느 날 그에게 몸은 이상 신호를 보냈다.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났다.

"원래도 간이 안 좋아서 의사 선생님이 절대 마시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뭐 평소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소주 한 잔, 두 잔, 세 잔 딱 마셨는데 갑자기 몸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다음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간 상태가 아주 심각하니까 당장 입원하라고 해서 그 길로 입원했죠."

그는 술을 겁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술잔을 입술에 대지도 않고 늘 '털어'먹던 사람이었다. 담배도 하루 2갑 넘게 즐겼다. 간 수치가 1000이 넘어 입원을 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 이후 술과 담배를 끊었다. 올해로 딱 11년째다.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요. 2006년 9월 22일이 제가 마지막으로 술 마신 날이에요. 지금 생각하니 웃긴데…(웃음) 금연을 마음먹고 나서 내일부터 담배를 당장 못 필 생각을 하니 너무 슬픈 거예요. 밤 11시 넘은 시각에 밖에 나가서 담배를 샀죠. 그러고 줄담배를 계속 핀 거예요.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얘(담배)랑 평생 가야겠구나 싶기도 했어요.(웃음) 술은 60세가 넘으면 한 잔 정도 먹고 싶은 마음은 들어요."

유 대표의 일상은 자연과 거리가 멀었다. 주말에 등산가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저분(등산가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랑 술도 마시고 어울릴 텐데 왜 혼자 산에 갈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러다 술과 담배 끊고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싶었는데… 우연찮게 산에 한 번 가게 됐어요."

그때부터 유 대표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유 대표는 단번에 산에 반했다. 그는 그 이후로 시간 날 때마다 산을 찾고 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유명한 산과 숲도 찾아다니지만 자신 곁에 늘 가까이 있는 동네 뒷산을 가장 사랑한다고 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바뀐 게 신기해요. 그때 산에 올라가서 자그마한 풀과 꽃을 보는데 굉장히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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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대표가 찍은 생태 사진들로 꾸며진 사무실 내부. /서정인 기자

유 대표는 2011년에 오래 다니던 회사는 그만뒀다.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겠지만 제 경우는… 이왕이면 살아가면서 좋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상황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잘 누그러트려야 하는데 그게 한계치를 넘어가는 것 같았어요. 이런 생활은 계속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그만뒀죠."

그 뒤 보험 영업일을 몇 년 했다. 일을 하면서도 그는 자주 자연을 찾았다.

"예전에는 산에 가는 사람 보고 '왜 엄한 데 가서 힘을 빼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산에 가서 하루를 살 에너지를 얻고 왔던 거예요. 저도 주말 동안 산에 안 가고 집에서 빈둥거릴 때에는 피곤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이틀 합쳐서 10시간 정도 산을 타야지 일주일 힘이 생기더라고요."

숲해설가, 수목원 전문가 되다

유 대표가 꾸준히 산에 다니는 것을 지켜보던 지인의 조언으로 2010년부터 창원대 평생교육원에서 약초 공부를 했다. 약초이용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약초 발효에 대해서도 공부해둔 상태였지만 그쪽으로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약초를 캐는 게 너무 마음이 불편했어요. 사진으로 담는 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요."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지인이 '니는 숲해설가가 딱이다' 라고 말했다. 문득 이게 앞으로 30년 동안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경숲해설가 협회에서 해설가 과정을 수료해 자격증을 땄고, 2015년에는 수목원 전문가 과정에 들어갔다.

"아직 일반인들은 생소할 수 있는데, 미국, 독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몸이 아플 때 수술받거나 약을 처방받거나 하기도 하지만 숲에 가서 쉬라는 처방도 받아요. 우리나라도 수목원이나 '치유숲'을 관리하는 관리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있어요. 한해 50명을 11개월 동안 함께 숙박하며 교육하는 과정이 있어서 거기에 참여했어요."

그래서 그는 이프네이처 대표이기 전에 숲해설가, 수목원 전문가다. 수목원 전문가 교육을 받고 나서는 경주동궁원에서 잠깐 식물원 공사에 참여했다. 그때 경험은 아직까지 유 대표에게 든든한 마음의 자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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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대표가 펴낸 <마음으로 다가가는 내 고장 숲속여행>. /서정인 기자

"이내증 사장님이라고 그때 인연을 맺은 사장님과 지금도 전화통화를 해요. 여미지식물원을 만드셨고 초대 원장을 하신 분이에요. 이분을 만난 것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었죠. 그 덕분에 식물원장이 되어봐야지 생각하기도 하고, 더 늦게 전에 이 일을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년인 2016년은 이프네이처를 꾸려나가기 위한 자금을 벌던 시기였다.

"천연기념물 보호수 치료하는 일도 6~7개월을 했어요. 또 페인트칠도 하고 집기 나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누가 나무 가지치기해달라고 하면 다듬어주기도 하고 그랬죠. 일을 가려서 하지 않아요. 페인트칠할 때 냄새가 안 좋아서 힘들면 깨끗해진 벽을 보고 좋아할 얼굴들 떠올리면서 해요. 남들이 하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에 제 나름대로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면 그 과정이 즐거워요. 작년에는 재능기부처럼 부산에 있는 모교에 가서 강의했고, 학교나 농원에서 짧게 강의하기도 했고, 가끔 가지치기 관련 강의도 하고…. 2016년에는 제 일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경비가 필요하니까 그런 쪽으로 다졌어요. 사업자등록을 한 만큼 열심히 해봐야죠."

만약 자연이라면

이프네이터 사무실은 창원시 1인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에 있다. 올해 2월 사업자등록을 내고 심사를 거쳐 센터에 입주했다. 유 대표는 이프네이처라는 이름으로 사업체를 만들었지만 그 목적은 숲해설사를 하는 이유와 같다.

"이프네이처(If Nature)가 '만일 자연이라면'이라고 풀이할 수 있잖아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망각하고 살고 있어요. 자연을 닮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에요. 숲과 친하게 지내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사람들이 더 정을 나누며 살 거예요."

유 대표는 처음 산에 올라 자연을 마주하며 얻은 평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겨주고 싶다.

"돈을 많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남들이 봤을 때는 지지리 궁상일지 몰라도. 저는 일을 못 해서 돈이 없으면 6000원짜리 목욕탕 가는 거 미루고 좋아하는 국밥도 안 먹어요. 저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논하고픈 거예요. 물질·권력을 추구하고 한쪽으로 치닫는 사회에서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하고 건강한가?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형의 자산을 축적해야 내가 더 건강해지고 지역이 건강해지고 나라가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이번 주 일요일에 무학산에 올라갔는데 쥐오줌풀하고 벌깨덩굴을 보고 싶어서 간 거예요. 동네 뒷산에만 가도 너무나 볼 게 많고 행복을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일을 30년 동안 꾸준히 해보자는 마음에서 사업자를 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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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다가가는 내 고장 숲속여행> 속 88코스 경사도가 담긴 페이지. /서정인 기자

유 대표는 블로그(blog.naver.com/sstwohyun)를 운영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소중한 사진과 글이 블로그를 채우고 있다. 내용은 역시 동네 뒷산이다. 창원시를 걸치고 있는 산을 다니며 정리한 산길 소개와 사진, 자연과 벗하는 일상 이야기는 정성스럽다. 이 자료들은 이프네이처의 자산이기도 하다.

"저한테 동네 뒷산은 어머니예요. 소중한 친구고 삶의 큰 스승이에요. 수백 번 간 산이지만 늘 새롭죠. 사람들이 이프네이처를 통해 자연을 자주 찾게끔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사람이 수명이 길어졌잖아요. 60세 이후에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자연이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창원시 동네 뒷산 88코스

유 대표는 지난 4월 11년간 동네 뒷산을 마르고 닳도록 다닌 경험을 모아 '창원시 100세 88코스 <마음으로 다가가는 내 고장 숲속 여행>'을 펴냈다.

"창원에 있는 산만 담았어요. 부제인 '창원시 100세 88코스'라는 게 100세 시대에 팔팔하게 살기 위해 걸어야 하는 88코스가 담겨있다는 뜻이에요. SNS 통해서 지인들에게 책 구성에 대해 조언을 구했어요. 다수가 계절별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일단 계절별로 정리했어요. 그리고 어느 분이 두 시간 미만 코스만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소요 시간별로도 정리했어요. 편집도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로 8의 배수로 다 했어요.(웃음) 32코스 24코스 16코스 8코스 8코스… 사진도 8장의 사진으로 숲길을 담으려고 했고요."

눈에 띄는 페이지가 있다. 88코스의 경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페이지다.

"11년간 열심히 다녀서 이 숲길이 머릿속에 있다 보니까 경사로를 담아낼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소요시간이 2시간 미만이면서 완만한 길을 가고 싶다고 하면 2시간 미만 코스 중 7번째 코스를 가면 돼요. 봉암수원지 둘레길이죠."

유 대표는 창원시 산길 140곳을 동선 따라 담은 사진을 다 모아두고 있는데 <마음으로 다가가는 내 고장 숲속 여행>은 그 가운데 88코스를 추려서 만들었다고 했다. 무학산 정상에 다녀왔다고 해서 무학산을 모두 즐긴 것은 아니다. 정상은 하나라도 그곳을 향해서 가는 숲길은 수백 가지 조합이 될 수 있다.

"무학산은 하나지만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또 숲길 속 생태를 들여다보면 거기 사는 꽃, 풀, 곤충, 동물은 다 달라요. 다 다른 길이에요. 길에 따라 받는 느낌도 다르죠. 호젓한 오솔길, 빛이 들어와 따뜻한 길, 그늘져서 시원한 길, 안아주는 것 같은 포근한 길도 있고요. 정말 다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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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민 이프네이처 대표. /서정인 기자

유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것)을 해서 만들 수 있었다. 그만큼 부담이 컸다. 펀딩에 참여해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펀딩 해주신 분들이 금액만큼 책을 받아 가실 거 아닙니까. 몇 권씩 가져가면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선물할 텐데 '정말 좋은 책을 줬네' 이런 말을 펀딩 해주신 분들이 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중압감을 심하게 느끼면서 낸 책이죠."

유 대표는 마지막까지 우리 가까이 있는 동네 뒷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만큼 작은 산에서 생명들을 다 볼 수 있는 알짜배기 산이 잘 없어요. 창원에 있는 산은 특히 접근성이 너무나 좋아요. 이런 동네 뒷산의 맛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어떤 지인분이 60세 가까이 됐는데 봉암수원지를 처음 가보셨어요. 가보시고는 우리 지역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유 대표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내 고장 숲속여행> 250권을 경남 지역 도서관 곳곳에 기부했다.

"판매를 하기는 하지만 판매용으로 낸 것은 아니에요. 책 내고 여기저기 보내드리느라 번 것보다 택배비와 기름값이 더 들었을 거예요.(웃음) 돈으로 셈하기 싫어요. 앞으로 30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책을 3~4권 더 내고 싶은데 인세로 안정적으로 살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목표는 있다.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 있어요. 파주에 있고 서울에 있고…, 추석에 그 친구들이 여기 오면 기꺼이 제가 밥 사줄 수 있는 형편까지는 만들고 싶어요. 그전에는 제가 내려고 하면 친구들이 '니 형편 뻔한데 니가 왜 사노' 하면서 못 내게 했거든요.(웃음) 그 친구들 밥 사주고 싶어요. 일단 추석까지는 날일(일용직)을 병행하면서 사업을 유지하고 그 뒤부터는 병행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유 대표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산에 좀 다니시나요?'라고 물었다. 아무 대답 못 하고 웃고 말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서 결심했다. 2시간 미만 코스 중 가장 평평한 7번째 산길부터 걸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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