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무래도 지역신문사에 근무하다 보니 '지역공동체(local community)'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동체를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역공동체야말로 지역신문이 존립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그 속에서 공론장(public sphere)의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지역신문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나 강원도의 지역신문 구독률이 경기도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경기도의 인구 많은 도시들은 대부분 서울의 배후 위성도시여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경기도민이라는 소속감이나 공동체 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경기도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을 구독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죠. 반면 흔히들 오지라고 여기는 강원도나 육지에서 떨어진 섬 제주도는 그 반대의 경우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지리적 요인보다 더 공동체를 탄탄하게 묶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사전의 공동체 정의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이 여기에 해당하는 말인데요. 다르게 말하면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역사와 문화, 경험을 구성원이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고대 부족국가부터 수많은 신화와 영웅담이 만들어졌고, 오늘날에도 '스토리텔링'이란 이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신흥도시들은 공동체를 묶어줄 스토리가 부족하거나 없는 곳도 많습니다. 당연히 그런 곳은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도 약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그런 도시는 지방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스토리텔링'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일까요? 한동안 이 <피플파워> 지면을 통해 '도시와 스토리텔링'을 연재했던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도시의 이야기란 단순히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이야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도시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때 논의해야 할 이야기의 범위를 그래서 좁힐 필요가 있다. 도시의 근간이 되는 이야기, 도시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는 이야기, 도시 구성원이 자기 존재를 동일시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공통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지칭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도시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수립 이전의 고대, 즉 조선시대나 고려, 삼국시대, 심지어 가야시대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이라며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기 이야기라고 느끼기 어려운 먼 옛날이야기죠. 특히 우리나라의 신흥도시들은 대부분 인근 농촌지역에서 유입되었거나 직장 때문에 들어온 외지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시민이 그 도시가 탄생도 하기 훨씬 이전의 고대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긴 더욱 어렵죠. 그래서 김태훈 소장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도시주권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도시 이야기는 아직 백지에 가깝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그만큼 여지도 많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시민들이 주권을 찾아가는 여정이야말로 공화주의를 채택한 도시의 가장 핵심적인 스토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시민들이 주권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말에 주목했습니다. 지방정부가 예산을 들여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지역언론이 그 여정에서 스토리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어쩌면 저희가 지금까지 월간 <피플파워>를 통해 지역 인물에서 이야기를 찾고, 지역의 콘텐츠 자산들을 출판으로 연결시켜 온 것도 바로 그런 작업의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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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소장이 쓴 역작 <시민을 위한 도시 스토리텔링>이 곧 저희 출판사에서 나옵니다. 이 또한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이야기를 찾고 지역공동체를 탄탄하게 만들어 시민주권이 실현되는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여정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마침내 새로운 민주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지난 겨울 시린 손을 비비며 촛불을 들었던 위대한 국민의 힘이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도 시민주권시대가 열리길 고대합니다. 그 여정에 저희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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