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경남대 교수 평가 "독일보다 수십년 앞선 인쇄신문"
학계 공인 땐 '세계 최초'기록

"<조보>가 실물로 발견된 것은 기적이죠."

김영주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난달 발견된 조선시대 민간인쇄 일간신문 <조보>에 대해 '기적'이라고 평했다.

30일 경남대에서 만난 김 교수는 "발견된 <조보>는 1577년 인쇄된 것인데, 1592년 임진왜란이 난 것을 감안하면 거의 기적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보>는 오늘날 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당시 왕의 비서기관 승정원에서 각 분야 '소식'을 발행하면, 각 관청에서 오늘날 '편집기자' 같은 기별서리가 필요한 부분을 직접 손으로 써서 소식을 전했다.

김영주 교수. /박일호 기자 iris15@

<조보>에는 인사이동, 임금이 반성하는 이야기, 영의정·좌의정 등이 사직서를 냈다는 이야기, 소 전염병, 왕비 병환 등이 담겨 오늘날 신문 보도 내용과 견주어봐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를 본 공인(기인)들이 목활자·금속활자 등을 이용해 '인쇄'해 팔았다. 김 교수는 "선조가 국가기밀 누설을 우려해 폐간했지만 이후 그런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당시 공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당시 몇 부가 발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1부를 수백 명이 돌려 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민간인쇄 <조보>가 세계 최초 인쇄신문으로 인정받을 것을 기대했다.

그는 "사실 23, 24일 자 연속 발행됐다고 해서 반드시 '일간'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지만 6일, 15일, 19일 자로 발행된 것을 보면 최소 '주간'으로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독일보다 일간지로는 70여 년, 주간지로는 40여 년 앞서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조보>가 세계 최초 신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 이후 국제 학술대회 등을 거쳐 인정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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