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안지 기입 잘못하고 무효 처리 되고 임용시험서 맛본 좌절
절망 대신 찾아온 '울림'"괜찮아, 걱정마, 잘했어"다시 일어서는 희망으로

참새는 창원에 사는 작가지망생 황원식 씨의 필명입니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팟캐스트(인터넷 방송)에도 참여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상담센터도 운영하며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2주에 한 번 서평과 에세이가 번갈아 독자를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2012년 공무원 임용 시험날 아침, 나는 남해군 임용 시험장에 있었다.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한다!' 2011년, 평균 합격선을 넘었음에도 희망 근무지를 창원으로 고집하다 결국 떨어졌다. 군 지역에 원서를 넣었으면 합격했을 점수였다. 그 안타까운 패배가 서러워 1년을 독서실 모서리에 박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해 푸른 바다를 떠올렸다. 바다를 상상하지 않으면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래 남해로 가자! 꼭 창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도 정시에 퇴근하고 해안선을 따라 운치 있게 걸어보자! 거기서 아리따운 낭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귀여운 아기도 낳자!' 이런 상상이 힘든 공무원 시험 준비를 1년 더 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남해군'으로 지원했다. 역시 경쟁률은 낮았다. 그해는 인원도 평년보다 많이 뽑았다. 누구도 내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다.

합격하고 싶다는 의욕이 지나친 탓일까. 시험장에 들어선 나는 긴장감이 뼛속까지 침투해 깊은 호흡이 잘되질 않았다. 답지를 표시하는 손은 누가 봐도 심하게 떨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거의 다 풀었고, 시간은 제법 남았으며 무엇보다 온 힘을 다했다. 나는 모두의 기대처럼 합격할 것이었다.

10분 남짓 남았을 때다. 마지막 과목 표시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두 줄을 건너뛰고 오답 2개를 이어서 적었다. '어쩌지? 오답 1개면 무시하겠는데 두 문제는 많이 아까운데?' 그때 나는 잘못 적은 답지는 놔두고 새 답지를 받아 시간 안에 못하면 기존 답지를 제출하면 되겠다고 생각해 감독관에게 새 답지를 달라고 했다. 감독관은 새 답지를 건네주며 기존 답지를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 항의할 틈도 없이 새 답지를 빨리 채워나가야만 했다.

아직 2분이 남았다. 아 충분하다! 한숨 돌리고 다시 써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종이 쳤다. 아 뭐지? 그제야 감독관이 처음 교실에 와서 앞의 시계가 1~2분 느리니 참고하라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감독관이 답지에서 손을 떼라고 할 때도 열심히 답을 적었다. 이제 5문제 남았다. 그런데 하필 내 자리는 답지를 제일 먼저 걷는 가장자리 줄이었다. 감독관이 빛과 같은 속도로 다가왔다. "셋 셀 동안 답지를 주지 않으면 무효 처리됩니다. 하나, 둘, 셋!" 이와 동시에 답지를 완성했지만, 감독관은 그냥 나를 지나쳤다.

"이 답지 받아주세요!" "안 됩니다!"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아까 나한테 규정 설명도 없이 답지 찢었잖아요? 그리고 시계가 이상하면 시험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학생들에게 상기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온갖 진상을 떨며 매달렸다. 다 소용없었다. 끝났다.

집에 오는 길에 힘들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내일이나 모레부터 찾아올 심리적 후폭풍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미 나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 교실 시계는 2분 느리게 맞춰져 있었을까? 왜 나는 제일 가장자리 줄에 앉았을까? 감독관은 왜 새 답지를 주면서 "시계가 2분 느린 거 아시죠? 기존 답지는 파기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이런 말조차 없었을까? 어떻게 1줄도 아닌 2줄이나 건너뛰고 답을 이어갔을까? 나는 그때까지 무슨 시험을 치더라도 답지 한번 바꿔 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하필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에서 이런 일을 겪었을까?

그날의 상황들이 그저 신기해서였을까? 억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운명' 정도는 있어줘야 이 상황이 설명될 것 같았다. 이렇게 모든 요소가 딱딱 어긋나기도 어려운 것 아닌가?

차라리 이런 이상함이 오히려 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나에게 강력한 한 가지 영감을 주었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그 울림이 매우 커서 후폭풍은커녕 오랫동안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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