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화) 에세이 '내 잘못이 아니야'

답안지 기입 잘못하고 무효 처리 되고 임용시험서 맛본 좌절
절망 대신 찾아온 '울림'"괜찮아, 걱정마, 잘했어"다시 일어서는 희망으로

황원식 시민기자 webmaster@idomin.com 2017년 05월 30일 화요일

참새는 창원에 사는 작가지망생 황원식 씨의 필명입니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팟캐스트(인터넷 방송)에도 참여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상담센터도 운영하며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2주에 한 번 서평과 에세이가 번갈아 독자를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2012년 공무원 임용 시험날 아침, 나는 남해군 임용 시험장에 있었다.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한다!' 2011년, 평균 합격선을 넘었음에도 희망 근무지를 창원으로 고집하다 결국 떨어졌다. 군 지역에 원서를 넣었으면 합격했을 점수였다. 그 안타까운 패배가 서러워 1년을 독서실 모서리에 박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해 푸른 바다를 떠올렸다. 바다를 상상하지 않으면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래 남해로 가자! 꼭 창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도 정시에 퇴근하고 해안선을 따라 운치 있게 걸어보자! 거기서 아리따운 낭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귀여운 아기도 낳자!' 이런 상상이 힘든 공무원 시험 준비를 1년 더 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남해군'으로 지원했다. 역시 경쟁률은 낮았다. 그해는 인원도 평년보다 많이 뽑았다. 누구도 내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다.

합격하고 싶다는 의욕이 지나친 탓일까. 시험장에 들어선 나는 긴장감이 뼛속까지 침투해 깊은 호흡이 잘되질 않았다. 답지를 표시하는 손은 누가 봐도 심하게 떨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거의 다 풀었고, 시간은 제법 남았으며 무엇보다 온 힘을 다했다. 나는 모두의 기대처럼 합격할 것이었다.

10분 남짓 남았을 때다. 마지막 과목 표시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두 줄을 건너뛰고 오답 2개를 이어서 적었다. '어쩌지? 오답 1개면 무시하겠는데 두 문제는 많이 아까운데?' 그때 나는 잘못 적은 답지는 놔두고 새 답지를 받아 시간 안에 못하면 기존 답지를 제출하면 되겠다고 생각해 감독관에게 새 답지를 달라고 했다. 감독관은 새 답지를 건네주며 기존 답지를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 항의할 틈도 없이 새 답지를 빨리 채워나가야만 했다.

아직 2분이 남았다. 아 충분하다! 한숨 돌리고 다시 써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종이 쳤다. 아 뭐지? 그제야 감독관이 처음 교실에 와서 앞의 시계가 1~2분 느리니 참고하라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감독관이 답지에서 손을 떼라고 할 때도 열심히 답을 적었다. 이제 5문제 남았다. 그런데 하필 내 자리는 답지를 제일 먼저 걷는 가장자리 줄이었다. 감독관이 빛과 같은 속도로 다가왔다. "셋 셀 동안 답지를 주지 않으면 무효 처리됩니다. 하나, 둘, 셋!" 이와 동시에 답지를 완성했지만, 감독관은 그냥 나를 지나쳤다.

"이 답지 받아주세요!" "안 됩니다!"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아까 나한테 규정 설명도 없이 답지 찢었잖아요? 그리고 시계가 이상하면 시험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학생들에게 상기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온갖 진상을 떨며 매달렸다. 다 소용없었다. 끝났다.

집에 오는 길에 힘들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내일이나 모레부터 찾아올 심리적 후폭풍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미 나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 교실 시계는 2분 느리게 맞춰져 있었을까? 왜 나는 제일 가장자리 줄에 앉았을까? 감독관은 왜 새 답지를 주면서 "시계가 2분 느린 거 아시죠? 기존 답지는 파기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이런 말조차 없었을까? 어떻게 1줄도 아닌 2줄이나 건너뛰고 답을 이어갔을까? 나는 그때까지 무슨 시험을 치더라도 답지 한번 바꿔 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하필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에서 이런 일을 겪었을까?

그날의 상황들이 그저 신기해서였을까? 억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운명' 정도는 있어줘야 이 상황이 설명될 것 같았다. 이렇게 모든 요소가 딱딱 어긋나기도 어려운 것 아닌가?

차라리 이런 이상함이 오히려 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나에게 강력한 한 가지 영감을 주었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그 울림이 매우 커서 후폭풍은커녕 오랫동안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