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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는 행복해] (2) 그리운 시어머니

애정 어린 잔소리 해주던 친구이자 엄마였던 그
두 번의 큰 수술에도 가족 먼저 챙겼던 마음
함께한 시간 '추억'된 오늘 죄송하고 또 감사해

비타 윈다리 쿠수마 webmaster@idomin.com 2017년 05월 29일 월요일

'따따는 행복해'를 연재하는 비타 윈다리 쿠수마(31)씨는 인도네시아 출신입니다. 자카르타에 있는 대학에 다닐 때 당시 유학생이던 남편과 연애결혼을 하고 계속 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지난 2013년 창원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대학에도 다니는 똑 부러진 한국 아줌마입니다.

/편집자주

벌써 1주기가 다가오지만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작년 7월에 우리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친정어머니보다 더 가깝고 제 마음을 더 잘 알던 분이 바로 우리 시어머니입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도 그냥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시어머니한테는 여자끼리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제 비밀도 다 말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선배한테 폭력을 많이 당한 것도 이야기했습니다. 만약에 우리 친정어머니가 이 글 읽으시면 조금 질투를 할 수도 있겠네요. 친정어머니와도 힘든 이야기 주고받고 싶었지만 혹시나 제 힘든 상황 때문에 어머니 마음이 아플 수도 있어서 아예 말을 안 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에는 제가 어린 나이에 결혼한 데다 한국말도 모르고 밥을 할 줄 몰라서 말다툼을 많이 했습니다. 저한테 잔소리를 아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저도 모르는 사이 시어머니랑 더 친해졌습니다. 애 낳고 시어머니가 인도네시아에 오셔서 몇 년 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군대 갔을 때도 다시 와서 저를 도와줬습니다. 그때부터 점점 친해졌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인도네시아 문화도 많이 아시고 인도네시아 말도 많이 배우시고 그렇게 저를 많이 이해해 주셔서 아주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가끔 혼자서 집을 청소하는 동안 시어머니 잔소리를 기억하고, 그 잔소리가 맞는 말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너무 어려서 잘 이해 못 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런 말들이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10년 동안 시어머니랑 같이 살면서 어머니도 자기 옛날부터 지금까지 힘든 이야기 저에게 많이 하시고, 제 얘기도 아주 잘 받아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마음이 많이 편했습니다.

특히 시어머니는 제 편이어서 더 좋았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 시어머니께서 다 정리해주셨습니다.

사실 아직도 후회하는 일이 있습니다. 시어머니 구강암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2012년 8월, 제가 가족들이랑 르바란(Lebaran·한국 추석 같은 인도네시아 명절) 때문에 친정에 갈 때입니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저한테 이가 아프니 진통제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진통제를 사 드리니 시어머니가 저한테 잇몸을 좀 봐달라고 하셨습니다. 보통은 핑크 색깔인데, 시어머니 입속은 검은색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지만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한테는 빨리 준비하고 가라고, 자신은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습니다.

2012년 말 시어머니께서 한국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바로 병원에 가시더니 구강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를 듣고 우리 남편은 어머니 옆에 못 있어 많이 미안해했습니다. 첫 수술은 14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임신 중이라 한국에 바로 못 가고 아기 낳고 한 40일 후 가족 모두 한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첫 수술 트라우마가 너무 크셔서 다음 치료를 아예 안 했습니다. 수술할 때 입에서 가슴까지 다 자르는데 그게 얼마나 아픈지 너희는 모르잖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2년 동안 우리랑 아주 건강하게 밥을 잘 드시고 잘 놀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암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은 다시 수술을 했습니다.

두 번째 수술은 더 힘들었습니다. 수술 시간도 전보다 많이 걸리고 혀와 턱을 다 잘라서 말하는 것과 먹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목에 구멍을 내어 숨을 쉬고, 배에 호스를 연결해 음식을 드셨습니다. 몸무게가 30㎏까지 줄었습니다.

수술하고 나서 몇 달 후에 시어머니가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자신도 불편하신데 자식하고 남편을 생각해 매일매일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은 다 해주셨습니다. 진짜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요리를 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좋아하던 떡볶이를 같이 만드시고는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병원에서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우리 남편이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손자들하고 셋이 여행 가자는 약속도 못 지켰습니다. 시어머니 아프실 때 죽하고 주스 정도만 만들어줬을 뿐 진짜 효도를 못해서 많이 미안합니다. 입속을 살펴봤던 그때 시어머니 말을 듣지 말고 가족들한테 말해야 했다고 지금도 후회합니다.

저한테 엄마 같은 시어머니, 친구 같은 시어머니, 그 소중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아침에 설거지하다가도 혼자서 울고, 밤에 혼자 있을 때도 많이 울었습니다.

보통 그 시간이 어머니랑 항상 같이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집이 너무 조용합니다. 시어머니 잔소리가 그립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다 못 배웠습니다.

이제 저는 시어머니랑 자주 갔던 어시장에도 혼자 가고, 같이 가던 식당도 혼자 갑니다.

시어머니랑 자주 갔던 그 골목 길은 지나가면 참 슬프고 그립습니다. 시어머니, 부디 다른 세상에서도 항상 행복하시고, 이제 아프지 마시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이 드셔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비타 윈다리 쿠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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