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거창국제연극제가, 거창군이 설립한 재단과 그동안 행사를 꾸려온 민간단체에서 비슷한 기간에 이중으로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 났다. 연극제를 주최해 온 거창국제연극제육성진흥회(진흥회)가 군에 공동 주관을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거창연극제의 파행과 위상 추락은 불가피해졌다.

거창군과 진흥회의 갈등은 올해 초 군이 거창연극제와 성격이 똑같은 연극제를 개최하고자 군 단위로서는 처음으로 문화재단인 거창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불거졌다. 군은 진흥회가 신구 인사 간 내분이 있고, 보조금 집행이 불투명하며, 거창연극제에 지역민이나 지역 연극단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등 이유를 들었다. 그 때문에 중앙정부로부터도 낮은 등급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군의 주장은 도민 눈으로 보아도 수긍할 만한 것이 없지 않다. 국제연극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국내 참가단체가 압도적으로 많고 외국단체 참가는 구색에 불과한 경우도 많았다. 군 주장대로 보조금 집행이 불투명하다면 당연히 환수나 지급 중단, 나아가 관련자의 사법 처리까지 추진할 사안이다. 그러나 예산을 부여하는 지자체로서 그동안 감사와 관리에 소홀했던 점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예산 지원을 받은 민간단체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지자체의 책임이 부각될 뿐 똑같은 내용의 행사를 중복으로 치르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군의 사고방식에는 지원금을 이유로 민간의 예술 행사를 자기 것처럼 생각하는 권위주의 태도가 엿보인다. 진흥회 측으로서는 온갖 고생 끝에 키워온 예술 행사를 지자체에 빼앗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부가 개인이나 민간단체의 예술에 정면으로 개입해 물길을 바꾸어서는 안되며, 문제가 있으면 예산을 끊거나 제한하는 것으로 족하다. 주민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관리하고 민간의 창작이 활발해지도록 지원하는 데 그쳐야 한다. 거창군이든 진흥회든 문화예술은 특정인이나 특정 조직의 사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두 쪽으로 나뉜 거창연극제의 위상 추락과 도민의 외면이 명백한데도 거창군이 이를 강행한 것은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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