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2) 밀양…천황산과 재약산
이국적 풍경 '영남 알프스' 화전민 80가구 삶터 역할
이제는 학교터 등 흔적만 송전탑 등 들어서며 '눈살'

밀양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동쪽과 북쪽으로는 높은 산맥이 거대한 병풍을 이루고 있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밀양강이 되어 지역을 유유히 휘감아 흐르다 남쪽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밀양강과 낙동강은 오랜 시간 비옥한 토양을 축적해 너른 평야를 펼쳐 놓았다.

산과 강, 평야 그냥 구색만 갖춘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당당하고 빼어나다. 이들은 인간의 눈에는 대립적이고 경쟁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잘 어우러져 온갖 생명을 키워냈다. 그 혜택은 사람에게로 돌아왔고 결국 산과 강은 사람을 키웠다. 그러니 밀양은 천혜의 땅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풍요의 시작은 밀양의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영남 알프스'는 밀양의 대표 산맥이지만 경남은 물론 영남, 더 넓게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하다.

시원한 전망, 기암괴석 압권

구름과 눈높이를 맞추는 산 그 아래 산지 평원이 하염없다. 우리나라 일반적인 산악지형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알프스에 비유되면서 '영남 알프스'로 불린다.

영남 알프스 넓은 품은 지리산 영역에 필적할 만하다. '3도 5군의 산' 지리산처럼 영남 알프스도 경남 밀양시·양산시, 경북 청도군·경주시, 울산시 울주군 등 3개 시·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최고봉인 가지산을 비롯해 천황산, 재약산, 운문산, 신불산, 간월산, 영축산, 고현산 등 1000m가 넘는 7개 산군이 주축을 이루며 연결돼 있다.

천황산(재약산 사자봉) 정상에서 재약산 수미봉으로 향하는 길. 발아래 넓디넓은 사자평에 싱그러운 '신록'이 융단처럼 깔렸다. /유은상 기자 yes@

밀양시 단장면·산내면과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 걸쳐 있는 천황산(天皇山·1189m)은 영남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사자평과 어우러져 영남 알프스를 대표한다.

일제강점기 천황을 숭배하고자 만들어진 명칭이라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밀양시는 '우리 이름 되찾기' 운동의 하나로 재악산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국가지명위원회에 올렸지만 2015년 부결됐다. 16세기 후반 고지도에 천왕산으로 표기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천황산은 '재약산 사자봉'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제 이름 찾기 시도 탓에 혼란을 빚기도 했지만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는 높게 살 만하다.

천황산 정상은 시원한 전망이 압권이다. 눈높이에 맞춰 시원한 하늘이 열리고 그 아래로 영남 알프스 준봉들이 경계를 이루며 사방으로 쭉 이어진다. 북쪽으로 운문산과 가지산이, 동쪽으로 간월산·신불산·영축산이, 서쪽으로는 화악산과 창녕 화왕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의 미세먼지로 더럽혀진 눈과 가슴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발아래에는 초록의 평원이 납작 엎드리고 있지만 오히려 그 선명함은 하늘과 경쟁하는 듯하다.

천황산 정상 능선 하늘정원길. 뒤편으로 운문산과 가지산이 보인다.

남쪽으로 길을 잡아 발길을 옮기면 천황재를 지나 재약산(載藥山·1108m) 정상에 어렵지 않게 도달한다. 재약산 정상은 '수미봉'으로도 불린다. 재약산은 신라의 한 왕자가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아 '약이 실린 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수미봉은 천황산 정상과 달리 쭉쭉 솟은 기암괴석이 각각의 생김새를 뽐낸다. 서쪽으로는 깎아진 절벽이다. 역시 정상에 서면 동남쪽 발아래로는 넓디넓은 사자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천황산과 재약산에 붙은 '삼남금강', '외유내강의 산'이라는 수식어가 쉽게 이해된다. 산 안에는 고산 평원의 부드러운 산세를 하고 있고 그 바깥쪽 테두리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돼 있다. 깊은 산 속에 상상하지 못했던 넓은 평지와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수려한 바위가 함께 하면서 그 감동은 배가된다.

이 밖에도 산이 품은 흑룡폭포, 층층폭포, 금강폭포, 표충사, 얼음골과 깊은 계곡, 싱그러운 숲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힘겨운 삶 품었던 사자평

험준한 산 속에 펼쳐진 평원, 몹시 이국적이다. 앞에서 말했듯 영남 알프스의 비교우위 품목은 뭐니 뭐니 해도 고산 평원이다. 영남 알프스에는 넓은 평원이 곳곳에 있다. 신불산과 취서산 사이의 신불평원이 약 200만㎡(60만여 평), 간월산 밑과 간월재에 약 33만㎡(10만여 평), 고헌산 정상 아래 70만㎡(약 20만여 평)의 억새가 피는 평원이 있다.

특히 샘물상회에서 시작해 천황산 정상 동쪽을 돌아 재약산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사자평은 평균 해발 800m 고지 400만㎡(120만여 평)에 이른다. 전국 최대 규모다. 산 아래 웬만한 들판보다 더 넓은 고산 평원, 처음 보는 이들이 감탄하고 그 매력에 빠져 다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사자평 이름에서 동물의 왕 '사자'를 연상하지만 넓은 들판을 뜻하는 우리말 '사'와 산의 옛말 '자'의 합성어다.

이곳 평원은 신라시대에는 화랑의 수련장으로,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의 승병 훈련장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예전부터 억새밭은 아니었다.

사실 억새평원은 사람이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스키장을 만들고자 숲을 베어냈지만 강설량이 적어 백지화하면서 훼손만 시켰다.

그 이전 조선 말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고, 한국전쟁 후에는 빨치산이 활동 근거지로 삼기도 했다. 그 뒤로는 살길 없었던 백성이 이곳에 기대어 거친 삶을 풀어나갔다. 하나둘 모여든 민초들이 밭을 일구고자 불을 질러 숲을 없애면서 지금의 평원이 형성됐다.

우수한 목초지 덕에 목장도 들어섰다. 한때 이곳에는 화전민 80여 가구가 살았고 이들 자녀를 위해 1966년 고사리분교가 지어졌다. 또 등산객이 늘어나면서 흑염소 요리, 닭백숙 식당도 생겨났다. 하지만 학교는 30년간 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7년 폐교됐고 식당도 동물 살생과 계곡 오염 등을 우려한 땅 소유주 표충사의 퇴거 요청에 소송 끝에 1999년 철거됐다.

고사리분교 터.

아직도 이곳에는 학교터와 화전민이 살았음을 짐작할 만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동안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축복의 땅이었던 사자평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전국 최대 억새밭은 조금씩 키 작은 나무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다소 실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 또한 자연의 순리다. 아낌없이 내어주고 상처입은 몸을 스스로 회복해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고마움과 자연이 주는 교훈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여전히 자신의 편익을 위해 작은 힘을 과신하면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살고 있다.

천황산 재약산에서도 안타깝게 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멀리 산자락 사이로 연결된 흉물스러운 756㎸ 송전탑과 거추장스러운 얼음골 케이블카가 눈을 찌른다. 기사를 보고 사람이 산을 찾는 것 또한 훼손에 동참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하산하는 발걸음이 더 무겁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