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2) 밀양 감싸안은 명산
가지산·천황산서 뻗은 맥동·북·서 흘러 '울타리'로 경계 이루고 영남루 낳아
읍치 굽어살핀 추화산 환상적 전설 깃든 만어산 약한 자 피난처 구만산

밀양은 낙동강이 흐르는 남쪽을 빼면, 동·북·서쪽 모두 명산을 울타리로 두르고 있다.

동쪽으로는 가지산에서 시작해 남으로 천황산, 재약산, 향로산, 금오산, 천태산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경북 청도, 울산 울주, 양산과 경계를 이루며 낙동강에 이른다.

북쪽으로는 가지산에서 뻗어나간 줄기가 운문산, 억산, 구만산, 육화산까지 이어지다 밀양강을 건너 화악산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청도와 경계를 이루는 산 무리다. 서쪽으로는 천왕산에서 시작해 열왕상, 영취산, 종암산으로 이어지면서 낙동강을 만난다. 이는 창녕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해가 잘 드는 낙동강 주변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이렇게 우람한 산이 사방을 두르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었으니 밀양은 예로부터 따뜻하니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시·군 경계 이뤄

밀양 경계를 이루는 산 중 으뜸은 아무래도 가지산(加智山·1241m)과 운문산(雲門山·1195m), 천황산(天皇山·1189m), 재약산(載藥山·1108m) 산군이 되겠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에서 이어진 지맥이다.

요즘에는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며 종주코스가 유명하다. 이 중 가지산이 가장 높아 주봉(主峰)이 된다. 가지산은 옛날에는 석남산(石南山), 실혜산(實惠山), 시례산(詩禮山) 등으로 불렸다. 석남산은 산 중턱에 있는 석남사란 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실혜산과 시례산은 밀양 얼음골에 있는 마을 이름 '시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가지산은 '까치산'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 하는데, 석가의 지혜를 뜻하는 '가지(迦智)'와 비슷해 가장 널리 쓰였다고 한다. 가지산에서 얼음골로 건너가기 전 봉우리가 백운산(白雲山·885m)이다. 산 전체가 거대하고 하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이 흰 구름처럼 보인다며 붙은 이름이다. 특히 산 정상 아래 하얀 호랑이가 웅크린 것처럼 드러난 백호 바위가 유명하다. 백호 바위가 마주 보는 산이 얼음골이 있는 천황산, 재약산이다.

밀양과 경북 청도의 경계가 되는 운문산은 영남알프스에 속한 산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황산 정상에서 맞은편으로 운문산을 보면 그 뒤로 억산(億山·954m)이 숨은 듯이 보인다. 이름 그대로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많고 많은 산만 보인다. 억산에서 육화산, 구만산으로 연결돼 계속해 청도와 경계를 이룬다.

◇밀양 진산, 화악산과 그 산맥

밀양은 조선시대와 지금이나 그 경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동래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주 큰 고을이었다. 고을의 중심이 되는 읍치(邑治)는 지금의 내일동 주변이었다. 현재 밀양부 관아가 복원돼 있어 읍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밀양 고을의 진산(鎭山·나라에서 지정한 고을을 수호하는 산)은 화악산(華岳山·932m)이다. 이 산은 밀양 북쪽 지역에서 청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화악산 정상 주변 세 개의 봉우리가 중국의 오악(五嶽) 중 하나인 서악(西嶽) 삼봉(三峯)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서악의 다른 이름 화악(華嶽)을 그대로 가져와 이름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지도에는 '둔덕산(屯德山)'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들판 뒤편으로 보이는 밀양 진산 화악산과 송전탑

화악산에서 두 줄기 산맥이 남쪽으로 뻗어내리는데, 한 줄기는 종남산을 지나 하남읍 덕대산으로 이어진다. 다른 한 줄기가 읍치 쪽으로 뻗는데, 옥교산(玉轎山·538m)을 지나 추화산(推火山·243m)까지 이어진다. 밀양 읍치는 바로 이 추화산 아래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추화산이 실제 진산 노릇을 했지 않았나 추정한다. 옛 기록을 봐도 추화산은 작은 진산으로 불렸다. 또 정상 주변에 추화산성이 있어 유사시에 고을 주민이 대피할 수 있었다.

추화산에서 '추화'란 이름은 밀양의 옛 이름 미리벌을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미리벌은 밀불, 밀벌이라고도 하는데, 밀 추(推)자와 불 화(火) 자를 써서 적었다고 해석한다. 화악산과 추화산을 연결하는 산이 옥교산이다. 이 산이 밀양 시내를 굽어보고 있어 현대적인 진산이라 하겠다. 옥교산은 정상이 가마같이 생긴 봉우리라고 하여 가마 교(轎)를 썼다. 이 산에는 선녀가 옥가마(玉轎)를 타고 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또 우리나라 창조신 격인 마고 할미 전설도 있다. 마고 할미가 낙동강을 건너 화악산으로 가다가 오줌이 누고 싶었다. 옥교산 정상 근처 병풍바위와 탕건바위에 한 다리씩 딛고 오줌을 눴는데, 이 때문에 옥교산 정상이 팼다는 이야기다.

◇읍성을 이은 산과 그 주변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아동산(衙東山·87m)과 아북산(衙北山·118m)은 옛날 밀양읍성을 이루던 산이다. 아동산은 밀양읍성 관아(官衙)의 동쪽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산자락에 보물 제147호 영남루가 있고, 밀양읍성도 복원해 놓았다. 아북산은 아동산과 마찬가지로 관아 북쪽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 중턱에 밀양여고가 있고, 정상 주변에 체육공원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밀양 시내와 그 너머 옥교산, 화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밀양강 옆에 자리 잡은 아동산(영남루가 있는)과 왼편 아북산. 그 뒤편으로 추화산이 맥을 잇고 있다. /유은상 기자 yes@

풍수적으로 보면 밀양시 부북면에 있는 종남산(終南山·663m)이 안산이 되겠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옛 지도를 보면 읍치에서 밀양강 바로 건너에 율림(栗林)이란 숲이 있다. 지금 삼문동 지역이다. 이 숲이 실제로 안산 노릇을 했다. 기록을 보면 밀양 읍치 아래로 흐르는 밀양강 동쪽 용두산과 서쪽 마암산이 두 마리 용이고, 영남루 주변이 구슬인데, 두 용이 하나의 구슬을 다투기에 이 기운을 다스리려고 율림으로 조산(造山·산을 만듦)을 했다고 한다.

또 밀양강이 삼문동을 한 바퀴 돌고 내려간 반대편 강 건너에 장림(長林)이란 숲도 있었다. 율림과 장림은 풍수적으로 허한 곳을 막는다는 것 말고도 현실적으로 하천 범람을 막는 기능도 했을 것이다. 현재 두 숲 모두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영남루 전경.

◇독특한 이야기가 깃든 산

밀양시 단장면에 있는 경주산(慶州山·213m)은 옛날에는 경주산(競珠山)이라고도 불렸다. 우선 경주산(慶州山)이라고 할 때, 경주는 실제 경북 경주를 말한다. 옛날 마고 할미가 경주에 있는 산을 등에 지고 밀양으로 오다가 짐 끈이 풀려서 산이 그 자리에 떨어졌다. 그게 경주산이다. 후에 경북 경주 사람이 전설을 핑계로 해마다 산세(山稅)를 받으러 왔다고 한다. 이 지역에 살던 한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산세 낼 돈을 꾸러 다니다가 이 손자가 훌륭한 아이디어를 낸다. 경주 사람에게 우리는 이 산이 필요 없으니 와서 다시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그 후로는 경주 사람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경주산(競珠山)에서 이때 경주는 한자 그대로 구슬을 두고 다툰다는 뜻이다. 이 산을 둘러싼 용암산(龍岩山)과 용회산(龍回山) 등 주변 6개 봉우리가 마치 용처럼 생겼는데, 이 용들이 구슬처럼 동그랗게 앉은 경주산을 빼앗으려 서로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어산(萬魚山·670m)만큼이나 환상적인 전설이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삼국유사> 중 어산불영설화(魚山佛影說話)에 전하는 이야기다.

수로왕이 가락국을 세우고 다스리던 시절 옥지라는 연못에 살던 사악한 용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불교에서 말하는 사람 잡아먹는 귀신)가 연애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번개가 치고 우박이 쏟아졌다.

그러기를 4년, 보다 못한 수로왕은 주술로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부처에게 설법으로 이들을 교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나찰녀는 불교에 귀의하고, 사악한 용은 물론 동해에 사는 용과 물고기들도 설법에 감동해 만어산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만어사 앞 커다란 돌무더기 '어산불영' 전설이다.

물고기가 돌이 됐다는 만어산 경석

◇주민 9만 명 안은 산

밀양시 산내면과 청도군 매전면의 경계를 이루는 구만산(九萬山·785m)은 임진왜란 때 주민 구만 명이 이 산으로 피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밀양시 산외면에 있는 낙화산(落花山·626m)에도 임진왜란과 관련한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민씨 성을 가진 부인이 붉은 옷을 입고 이 산으로 피신을 했다. 하지만, 왜군의 추격은 끈질겼다. 더는 피할 곳이 없던 부인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고 만다. 그 모습이 한 송이 꽃이 떨어지는 듯했다고 해서 낙화(落花)란 이름이 붙었다.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산골짜기에 정승동이란 마을이 있다. 지금은 펜션이 여럿 들어섰지만, 원래 밀양에서 전기가 가장 늦게 들어간 오지 마을이다. 지금도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다.

이 골짜기에서 볼 때 가장 높은 봉우리가 실혜산(828m)이고 바로 옆이 정승봉(政丞峰·803m)이다. 흥선대원군 시절 천주교 박해를 피해 한 정승이 식솔을 이끌고 이 골짜기로 들어왔다. 정승봉 아래서 도자기도 굽고 교의도 퍼트리며 살았는데 그것이 지금 정승동이 됐다.

아북산 정상에 있는 돌무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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