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품고 와선 상처 잊게 되는 소록도
'치유의 길'걸으며 지난 시간 되돌아봐

아기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 방송을 통해서 그 섬이 간직한 고통과 아픔을 아실 것입니다. 또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두 수녀님의 숭고한 사랑 실천에 대해서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머나먼 오스트리아에서 찾아와 아무 연고도 없는 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살피며 43년간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사랑으로 살아온 삶도 큰 감동을 주었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준 것은 떠날 때 모습입니다. 젊음과 한평생을 소록도에 바친 이들이었지만, 어느 날 아침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렸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제대로 일할 수 없을 때가 오면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던 약속을 지키겠다. 부족한 외국인한테 큰 사랑과 존경을 베풀어 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는 마음을 전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교구장 배기현 주교님께서, 수녀님들이 떠나던 날 아침 당신께서 모셨다고 하시며 소록도와 수녀님들에 대한 특별한 인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주교께 졸라서 교구청 직원들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했습니다.

1935년도에 시작되어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방문한 역사를 간직한 '아기사슴 소록도 성당'과 결핵병동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얼굴이 선하게 생긴 '김연준 프란치스코' 본당 주임 신부님의 안내로 소록도 구석구석을 보았습니다. 잘 가꾸어진 공원들과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게 관리된 소록도를 둘러보면서, 병의 고통 중에도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환자들의 열정과 그 뒤에 숨은 피고름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한 곳, 한센병 환자들의 결핵병동을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격리돼 섬으로 쫓겨온 이들이 다시 격리된 결핵병동. 신학생 시절, 신부님과 함께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 병자성사를 집전하려고 환자 머리맡에 서 있으면, 피고름을 빨아먹으려는 파리가 새까맣게 앉아 있어 환자 얼굴도 보이지 않고, 기도문을 펼치면 파리가 들러붙어 글을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담담하게 설명해 주시던 주교님 눈에 습기가 차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듣는 이들 모두 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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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김연준 신부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작은 상처는 큰 상처를 만나면 치유된다고 합니다. 많은 분이 세상의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했다가도 이곳 결핵병동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자신들의 상처를 잊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상처를 돌아보게 됩니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한센인들이 만들었다는 '치유의 길'을 걸으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기사슴 소록도 성당과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님. 한센인들의 고통과 치유. 세상 어디에나 다양한 아픔이 있고 아픔은 치유의 은총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곳은 더 아픈 곳이고 그래서 더 큰 은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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