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가지즘(degagism), '구체제 청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시위 당시 독재자의 퇴진을 요구하며 외쳤던 구호에서 유래했고, 이후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구호로도 사용되었다. 요즘 이 용어가 프랑스 대선을 통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며 전 세계 정치 혁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데가지즘은 일단 구체제를 제거한 후 새로운 체제는 차후에 모색한다는 것으로 자칫 엄청난 혼란을 겪을 소지도 함께 안고 있다.

신생 정당이면서 39세의 어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의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를 물리치고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난해 국내 총생산(GDP)과 2007년의 수준이 같을 정도로 프랑스는 성장을 멈췄고 청년층 실업률 등 인근 독일·영국과 비교해 봐도 심각한 수준의 경제 상황이다. 거기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국고 횡령 같은 스캔들만 일으켰다. 기성 정치판에 지칠 대로 지친 프랑스인들은 30대 젊은이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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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지금 데가지즘 열풍 속에 있다고 본다. 최순실 사건 등 기존 보수 정치에 충격받은 국민들이 몇 달 동안 축제 분위기의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기존 대통령을 탄핵하고 이번 대선을 통해 전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질 높은 데가지즘을 보여줬다고 본다. 데가지즘의 혁신이라는 측면은 좋다만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대책은 걱정이 된다. 업무 인수인계가 보통 일반회사에서조차 중요하지 않은가? 이번 새정부는 거의 인계 받은 거 없이 완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일개 개인도 전임자의 업무인계 없이 일을 진행하기엔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입장에서 왜 걱정이 안되겠는가마는 언론을 통해 본 우리 대통령의 행보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대통령이 신고 있는 낡은 구두와 소박하고 탈권위적인 모습들,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의 기사들을 보면서 이번에 당선된 우리의 대통령은 프랑스 대통령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우리의 기대와 애정을 받을 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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