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도 뇌는 특정 사안에 가치 부여
지도자의 현명한 믿음은 세상 이롭게 해

필자는 꽤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 아파트의 특이한 점은 4층과 14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생활 속에서 '4'는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파트 승강기를 처음 탔을 때 4층과 14층이 없는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승강기를 탈 때마다 불안감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다. '4' 외에도 다양한 숫자들이 상황에 따라 좋은 의미 또는 나쁜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행운의 숫자를 갖고 있다. 숫자에 대한 이런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에 들어가 내가 처음 상을 받은 날은 8일이었다. 그날 나는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다. 며칠 뒤 나는 친지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큰 용돈을 받았다. 그때가 저녁 8시였다. 얼마 뒤 학기말 고사에서 나는 전교 8등을 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8'은 행운의 숫자가 되었다.

우리의 뇌는 다양한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 나는 손의 감촉과 눈을 통해 그것이 상장과 상패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8일인 것도 알았다. 뇌는 모든 것에 감정적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 특히 중요한 사건이 수와 연결되어 있을 때 우연의 일치라 할지라도 중요성과 의미는 커진다. 그때의 좋은 감정과 숫자 '8'은 내 기억에 새겨진다. 숫자 '8'에 대한 믿음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좋은 감정과 숫자 '8'의 관련성이 반복되면 그 믿음은 확고해진다.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 인상 깊은 기억, 강렬한 감정이 결합하면 믿음을 형성한다. 하지만 잘못된 기억과 그 잘못된 기억으로 인해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일도 흔하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교통사고 목격자 2만 명을 상대로 진술의 오류를 측정하는 200여 개 실험을 수행했다. 그녀는 실험 대상자에게 "차가 부딪칠(hit) 때 속도는 얼마였나요?" 또는 "차가 충돌(smash)할 때 속도는 얼마였나요?"라고 질문했다. 목격자들은 '부딪치다'(hit)보다 '충돌하다'(smash)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더 높은 속도를 산정했다. 무언가를 보았다는 사람의 믿음이 질문의 감정적 요소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달라진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심리학과 리처드 J. 데이비드슨 교수는 실험 대상자의 어린 시절 실제 사진을 열기구를 탄 탑승객들 사이에 겹쳐 인화해서 합성사진을 만들었다. 이 합성사진을 본 실험 대상자들의 절반이 어린 시절 이 열기구를 탔던 기억이 난다고 대답했다. 이 실험은 실험 대상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사건에 대한 개인의 해석방식에 따라 다양한 오류와 편견을 포함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의 말은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믿는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앞뒤 상황을 잘 몰라도 확실한 것으로 믿는다. 권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경향도 있다. 각종 자료나 언론사 보도 내용을 기정사실로 믿기도 한다. 어쩌면 현재 확신하고 있는 믿음이 가장 믿지 못할 믿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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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이 김해 봉하마을 노 대통령 묘역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추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지역주의와 이념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가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부터 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서민들의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고자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염원했던 올바른 세상에 대한 그의 믿음이자 꿈이었다. 지도자의 잘못된 믿음은 세상을 힘들고 어렵게 만들지만, 현명한 믿음은 세상을 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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