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온, 입찰 조건 만족 못해 명함도 못 내밀어
전국 19개 시도 소방본부 중 수리온 구매 1곳 불과

국민 세금으로 개발된 순수 국산헬기 '수리온'이 정부 조달 구매에서 입찰 조건이 맞지 않아 오히려 외면당하고 있다.

25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안전처 소속 중앙119구조본부가 최근 다목적 헬리콥터 2기를 지난 18일부터 40일간 공개입찰을 통해 구매하겠다는 내용의 공고를 냈다. 사업기간은 올해부터 2019년까지 3년간이며, 사업 예산은 대당 480억 원으로 모두 960억 원 규모다.

호남과 충청·강원 119특수구조대에 각각 1대씩 배치될 예정인 신형 다목적 헬기는 인명구조와 응급환자 이송, 화재 진압, 장기이식환자와 장기 이송, 항공수색과 구조활동, 공중 소방 지휘통제와 소방에 필요한 인력·장비 등 운반에 투입된다.

그러나 1조 3000억 원의 국민 혈세를 투자해 지난 2013년 민관 합동으로 개발한 수리온은 이번 공개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중앙119구조본부가 제시한 입찰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수리온은 기본 헬리콥터 구조에 △인명구조 호이스트 △화물인양기 △탐조등 △지상 견인바 등 부속장비가 포함돼야 하는 것은 물론 탑승인원 20인승 이상, 내부화물 적재 무게 1400㎏ 이상이라는 입찰조건을 만족 못하는 실정이다.

수리온 탑재 중량은 650㎏ 정도로 입찰에서 제시한 최소 기준 140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탑승인원도 조종석 2인을 제외하고 12인승 규모다. 이 역시 입찰조건의 절반을 가까스로 넘겼다.

이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은 중앙119구조본부에 '대형헬기 1대를 운용할 가격에 2대의 수리온을 제공, 비슷한 가격에 총 4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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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온 헬기./경남도민일보DB

특히 정비 공백 없이 1년 내내 운용할 수 있고, 유지비도 적게 든다는 이점을 설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리온 4대를 구매하면 운영인력 수급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중앙119구조본부의 거절 이유다.

중앙119소방구조본부 관계자는 "소방헬기는 크기별로 소형·중형·대형이 있다. 그런데 중앙119구조본부 존립 목적이 국가적 특수재난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여러 장비와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재난현장에 투입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형헬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형헬기에 들어맞는 규격은 내부적인 의견 수렴과 전문가 의견을 받아 탑승인원 20인승 이상, 총 적재량 1600㎏ 이상으로 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수리온은 외산헬기 횡포를 견딜 수 없었던 우리 정부가 국산헬기 개발에 착수하면서 탄생한 순수 국산헬기다. 헬기 구매와 운용 유지에 필요한 외화유출을 막고자 개발됐지만, 현장에서 외면받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개발 당시부터 이런 조건을 갖춘 헬기를 제작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국 19개 시·도소방본부 중 수리온을 구매한 곳은 제주소방 1곳뿐이다. 강원·서울·부산소방본부가 공고한 소방헬기 구매입찰에도 참여조차 못했다.

강원소방본부는 '형식증명 및 성능입증서'를 필수조항으로 넣었다. 서울소방본부는 수리온 항속거리와 탑승인원 등이 기준에 맞지 않은 것은 물론 방위사업청의 '형식인증'만 취득해 국제기준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특히 서울소방본부는 헬기에 장착된 두 개 엔진 중 하나가 고장 났더라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카테고리A' 등급을 입찰기준으로 내세웠다. 부산소방본부도 '카테고리A' 등급을 입찰기준에 넣으면서 KAI는 입찰참여에 실패했다.

KAI 관계자는 "수리온은 현재 육군·해병대와 같은 군용을 비롯해 경찰·의무 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우리나라 군 전력과 국민안전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무조건 20명을 태울 수 있는 헬기가 필요하다는 답변만 하고 있다. 도대체 수리온을 배제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수리온 1대를 구매하면 협력업체 일자리 창출은 물론 나아가 산업발전까지 200억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수리온은 많은 대기업과 1·2·3차 협력업체 등이 함께 협력해서 만들어지는 헬기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 등으로 사천시의회는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긴급 건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시의회는 건의문에서 "경쟁력 있는 국산이 단지 국산이라는 이유로 외국산에 역차별 받는 국내의 그릇된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며 "국민 혈세를 들여 개발한 제품을 우리가 사주지 않는다면 과연 다른 나라에 가서 당당하게 좋은 물건이니 사라고 할 수 있나"라고 인식개선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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