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정식 재판이 23일 열렸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 재판정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소된 지 36일 만에 열린 재판에서 박근혜 피고는 여전히 죄 없음을 주장했다. 피고석에 나란히 앉은 최순실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검찰의 공소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국정농단을 자행해 국민과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준 장본인들로서 최소한의 뉘우침도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국민은 또다시 절망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첫 공판이었던 만큼 검찰과 변호인 측의 공소사실에 대한 치열한 법리 공방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개인적 친분 관계를 맺어 온 최 씨에게 국가 기밀을 전달해 국정에 개입하게 하고 권력을 남용해 개인과 기업의 이권에 개입해 사익을 추구했으며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배제했다고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특검 수사 결과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대부분 밝혀진 사실로 국민적 지탄을 받았으며 촛불 정국을 만든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부정한다고 해서 국민적 인지 사실이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설사 박 전 대통령의 주장대로 사익을 직접 취한 적이 없으며 그럴 의도라면 재단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공적인 행사를 사적으로 취급한 사실만으로도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국민의 법 감정임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지경이다.

희박하기는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 주모자들이 법리적으로는 법망을 피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은 이미 심판을 내렸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역사를 되돌리려 한 것만 해도 분명한 직무유기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왜 국민 대부분이 긍정적인지 되짚어 보면 왜 구속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길을 선택해주길 바란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국민이 싫어하는 길을 고집으로 밀어붙인 업보가 결코 가벼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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