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민 기자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2) 히말라야에 오르며
더위와 먼지 속으로 첫발
여기가 지리산인지 덕유산인지
마침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낸 설산
가슴이 쿵쾅거렸다

머릿속에 새겨두었던 이미지처럼 청량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상상해왔던 히말라야 트레킹은 시원하고 상쾌한 것이었는데, 첫 시작은 덥고 텁텁했다.

포카라에서 트레킹 시작점인 '칸데'라는 곳에 가려고 2000루피(2만 원)를 내고 택시를 탔다. 1시간 20여 분 달리는 동안 거의 창문을 열 수 없었다. 포카라 시내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골길 전역이 흙 구름투성이였다. 안나푸르나 산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온 거리는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산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임도 옆으로는 주거지가 산개해 있었다. 임도를 달리는 차량은 대부분 관광객을 태운 지프였고, 현지인들로 가득 찬 버스도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는 무수히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갔다는 '랑탕'이나 '푼힐 전망대' 등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코스로 유명한데,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를 조망할 수 있는 '마르디 히말' 코스를 잡았다. 산 속에서 4박 5일을 보내야 한다.

산을 오른 지 3일, 해발 3000m 지점으로 향하는 중에 갑작스럽게 만난 안나푸르나 사우스의 자태에 숨이 멎는 듯했다.

해발 1770m인 칸데에 도착하자 세계 각국 트레킹족들이 전의(?)를 다지며 산행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두어 시간 올라가면 나오는 '오스트레일리아 캠프(2060m)'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 여기서 잠깐! 우리를 안내하고 짐도 들어주는 포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게 되면 짧게는 3박 4일, 길게는 보름 가까이 산에서 머물러야 하기에 현지인 짐꾼(포터)과 가이드를 섭외하는 건 필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따로 포터를 고용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15㎏의 짐은 들어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안내자는 30대 후반의 '빠샹'이라는 친구였다. 카트만두에서 조그만 한국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의사소통에는 무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내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고용자' 입장이 돼 본 경험이 없어서일까? 촌스러운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남에게 짐을 맡기면서까지 산에 올라야 하나' 정서적 반감이 불쑥 떠오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진 산행 막바지, 내 짐을 들어준 빠샹을 향해 '오 나의 수호천사'라는 찬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본격적으로 산 속으로 접어들었을 때 흡사 한국의 산과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거대한 안나푸르나 산군을 마주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지리산이나 덕유산 종주를 하는 느낌으로 쉬엄쉬엄 걷다 보니 식사와 숙박을 할 수 있는 로지(산장)가 나타났고, 그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한 후 또 걷기를 반복했다.

네팔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마차푸차레.

산 속에서 이틀 밤을 보낸 후에야 안나푸르나 사우스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로캠프(2970m)에서 하이캠프(3600m)로 가는 길에 어느 능선에 올랐을 때다. 안나푸르나 사우스(7273m)가 '훅∼'하고 몸속으로 빨려들어 오는 듯했다. 신비롭게 서 있는 마차푸차레 역시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푸차레는 해발 6993m의 봉우리로 현지인들에게 신성시되는 곳이다. 그래서 네팔 정부는 전문 산악인들에게 등반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뾰족하게 솟은 신비로운 자태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넋 놓고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를 보고 있을 때, 하산하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저 위로 오를수록 마차푸차레가 과연 제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네요. 보여주면 보여주는 대로, 안 보여주면 또 그런대로 볼만합니다"라는 조언에 진심 '동포애(?)'가 샘솟았다. 산줄기가 만들어내는 아득한 녹색의 물결을 바라보며, 또 저편에 우뚝 솟은 설산을 조망할 수 있었다. 울창한 산악지대가 지금도 융기하고 있다는 안나푸르나 산군을 든든히 받치듯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산 속으로 들어온 지 셋째 날, 하이캠프(3600m)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안나푸르나 사우스는 더욱 가깝게 눈앞에 서 있었고, 마차푸차레는 구름 속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새벽 해발 4200m 뷰포인트로 출발하면, 이번에 계획한 히말라야 트레킹은 막바지로 접어드는 셈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구간에서는 당나귀를 이용해 짐을 옮기는 네팔 사람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고산병을 걱정했으나, 딱히 몸에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해 질 녘 모습을 드러낸 웅장한 설산을 바라보며,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시면 금방이라도 천상에 오를 것 같았다. 그러나 맥주 한 모금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다음 날 새벽 뷰포인트로 오르는 길, 꿈길을 걷는 듯했다. 한 걸음씩 내딛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수많은 산악인이 저 설산을 정복해 왔다. '그래! 저 모습을 보고 저곳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면 이상하지'라고 생각했다. 뒤늦게 고산병이 오는지 가슴도 쿵쾅거렸다.

'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4500m)'에 약간 미치지 못한 곳에 있는 뷰포인트에 도착했을 때, 안나푸르나 사우스는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마차푸차레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 보여줘도 또 그런대로 볼만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내 앞에는 천상으로 통하는 길목 같은 설산이 있었고, 좀 비싼 편이긴 했지만 해발 4200m에서 마시는 치아(홍차와 염소 젖을 섞은 네팔 전통 차)가 속을 든든히 데워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네팔'이 한층 더 친숙해지는 느낌이었고 그제야 '나마스테(안녕하세요)'라고 읊조릴 수 있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