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위배"-"시대 맞게 변화"
일부 농협 농민 반발에 외국산 담배·과일 판매 중단
농민 "정서적 거부감"…농협 "외국인·다문화 증가 현실"

농협이 일부 수입품을 판매하다 논란을 빚은 것과 관련,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고민할 만한 지점은 있다.

사천 연합하나로마트(사천농협·곤명농협 공동 운영)는 필립모리스코리아에서 생산하는 말버러·버지니아슬림 등 11개 종류 외국산 담배를 판매했다.

하지만 여론 반발에 지난 4월 결국 판매대를 철수했다. 또한 일부 수입 과일 역시 판매를 중단했다.

창녕 남지농협 하나로마트도 여론 반발에 지난 4월 외국산 담배를 더 이상 팔지 않기로 했다.

농협은 농민들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농업협동조합'이다. 이러한 농협이 수입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농민 이익 도모'라는 대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수입품은 곧 국내 농민들 땀으로 생산된 것들과의 경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창녕 남지농협 하나로마트는 외국산 담배를 팔다 지난 4월 반발 여론에 판매를 중지했다. /경남도민일보 DB

농협 경남지역본부에 따르면 '수입 품목 판매 여부'에 대한 농협 자체 규정은 없다.

다만 농협중앙회에서는 채소·과일과 같은 1차 수입품은 판매하지 않는 쪽으로 지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판매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우선 외국인 증가에 따른 수요 증가다. 농촌은 특히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다. 또한 공단·농지 노동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논란을 빚었던 사천 연합하나로마트, 창녕 남지농협하나로마트가 수입 담배·과일에 눈 돌린 것도 이들 배려에 방점을 두고 있다.

농협 사천시지부는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수입 과일을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 소비자 요구에 맞춰 구색을 맞추는 정도였다"고 했다.

남지농협은 "특히 남지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 수입담배 찾는 이가 많다. 일반인들에게는 수입담배를 팔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국내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일부 품목이다. 바나나·파인애플과 같은 열대 과일이 대표적이다.

이들 품목은 한때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서 재배에 나섰지만 생산성이 떨어져 지금은 몇 농가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 99%가 수입품이기에, 국내 농가와의 직접적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농협 한 관계자는 "치아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은 바나나 같은 부드러운 과일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농협마트를 두고 멀리까지 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그런 점도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는 농협 정체성에 맞지 않다는 '정서적 거부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심심찮게 도마 위에 올랐고, 그때마다 농협을 향한 비판이 이어졌다.

남해 농민 최태민(69) 씨는 "나도 농협마트에 가면 행여나 수입품을 팔지는 않는지, 신경써서 살펴본다. 농민을 위해, 또 농민으로 먹고사는 농협이 수입품을 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상생 명분'을 찾으려는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농민들에게 피해가 없는 일부 수입품목만 팔되, 그 수입을 오롯이 농민들에게 환원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의령농협에서는 지난해 이를 추진해 총회 안건으로 통과까지 시켰다.

하지만 이후 농민 반발이 계속 이어져 없던 일로 했다.

농협 또 다른 관계자는 "시간을 두고 사회적 분위기와 합의에 따라 대처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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