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 마리를 살처분 해야 했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끝난 지도 제법 됐다. 그러나 당장 달걀을 생산할 수 없게 된 농가의 악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공급 부족으로 말미암은 계란값 상승으로 서민 식탁의 부담도 그만큼 늘어났다. 양계농가의 생계와 달걀값 안정을 위해서는 살처분 보상뿐만 아니라 그후 대책도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규제만 강화되다 보니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경남에서 AI로 말미암아 집중타를 맞은 곳은 양산지역으로 영남권 최대의 산란계 집산지이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AI가 발생해 16만여 마리를 살처분 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 보상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양계 농가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살처분 후 바로 입식할 수 없는 것과 전염병 예방을 위한 시설 강화 등 규제도 한몫했지만 전국적인 AI 여파로 태부족 현상을 보이는 산란계 병아리를 구하기조차 어려워진 것이 결정타이다. 새로 입식을 못하다 보니 사업 공백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생계부담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양계농가들이 곧바로 회복하지 못 하게 된 것은 정부와 관련부처의 안일한 사후 대책 때문이다. 살처분 보상으로 5곳의 농장에 총 10억 원이 지급됐지만 사료 등 외상값을 제하고 나면 새로 입식하는 데 또 빚을 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입식 이후에도 바로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4개월 이상 산란을 기다려야 한다. 정부는 6개월간 월 50만 원을 주기로 한 생계비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AI는 양계농가의 부주의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철새 이동과 맞물려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 양계와 같은 서민이 주요 소비층인 산업은 국가가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발생 이후 양계농 보호와 대책도 매뉴얼화되어 있어야 한다. 살처분 보상으로 끝내서는 양계업을 계속 영위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관련부처들도 인지하는 사실일 것이다. 양계 농가들이 시름하는 사이 달걀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정부와 관련부처는 양계산업의 위축이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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