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정권교체 약속 지키고 봉하로
새로운 미래·출발 되새길 듯

지난 4월 22일 대통령 선거 부산 유세에 나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만여 시민이 운집한 서면 한복판에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선거 보름 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때 보고드리겠다. 당신이 못다 이룬 지역주의 극복의 꿈, 당신의 친구 문재인이 해냈다. 이렇게 말씀드리겠다."

이날 문 후보의 눈은 군중을 향해 있었지만 간절한 마음은 하늘에 닿아있는 듯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이 약속을 지킨다. 약속처럼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이자 정치적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더는 5월을 눈물의 달이 아니라 뜻을 모으고 의지를 다지는 희망의 달이 되게 하겠다.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겠다.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 당신이 멈춘 그곳에서 당신이 가다가 만 그 길을 머뭇거리지도 주춤거리지도 않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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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결심을 굳힌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직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으며 한 약속이다.

이날 만남은 4년 전 지키지 못한 약속을 다시 이어나가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집권 10여 일을 갓 넘긴 문 대통령을 향한 세간의 시선 중 하나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데 강박적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 온 행보는 실제 4년 전 이 약속을 행동으로 옮기는 작업으로 읽힌다. 검찰 개혁, 지역과 친분 관계, 서로 다른 가치관을 뛰어넘은 대탕평 인사,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차별받지 않는 사람 사는 세상 등 노 전 대통령이 가다가 만 그 길을 한치 머뭇거림과 주춤함 없이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성품을 지닌 '친구' 문재인을 정말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니겠습니까."

지난 2002년 11월 2일 제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선대위원장을 기꺼이 맡아 준 문재인을 두고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노무현의 친구'라는 표현이 과분하다고 했지만 그 역시 선배이자 동지로서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보여 준 '원칙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1987년 고 박종철 군 추모집회로 같이 연행됐을 때 나는 조사에 응하면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식으로 임했지만 노 변호사는 아예 진술, 서명날인조차 거부했다. 연행돼 조사받는 것 자체가 불법·부당하니 일절 조사에 응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나는 이것이 후일 정치인이 된 노무현의 원칙주의라고 생각한다. 대의를 위한 실천에서도 한계를 두지 않고 철저한 것, 이것이 그의 또 다른 원칙주의다."

노 전 대통령이 일깨워 준 원칙주의는 취임 후 10여 일 동안의 문 대통령 업무 지시에도 배어 있다.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과 미세먼지 대책기구 설치 △세월호 희생 기간제 교사 3명 순직 인정 △안태근-이영렬 돈 봉투 만찬 감찰 지시 △4대 강 보 상시 개방과 사업 결정 과정 정책감사는 노 전 대통령의 '대의를 위한 실천에 한계를 두지 않는' 원칙주의와 묘하게 겹친다.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게 그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려 봉하에 온다. 이 자리에서 당신이 못다 이룬 꿈을 이제는 제대로 실현해 보이겠다는 새로운 약속과 다짐을 한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이게 '문재인의 운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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