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서 4·19혁명까지…들리는가, 민중의 함성이
허당 명도석 선생·김주열 열사 독립·민주주의 흔적
걸음마다 아픔 서린 '역사'비춰
소설가 지하련 삶 마주치기도

마산상업고등학교, 지금은 마산용마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어느 흉상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194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60년 옛 마산상고에 입학한 김주열 열사의 흉상.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그해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를 목도한다.

민중은 모두 들불처럼 일어나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김주열 또한 성난 군중 속에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주의 안녕을 누구보다 바랐을 그는 끝내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떠오른다. 주검은 비록 차가웠을지라도, 그의 염원은 도화선이 되어 4·19혁명을 이끈다. 열사의 흉상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한다.

김주열 열사 흉상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용마고 정문에서 우회전을 한다. 좁은 골목을 따라 나있는 길 끝에 다다른다.

4층짜리 빌라 건물 뒤로 있는 듯 없는 듯 방치된 집 하나가 보인다. 일명 '지하련 주택'이다.

소설가 지하련(본명 이숙희·1912~?)은 일제 말기와 해방기로 이어지는 1940년대, 당시 삶을 글로 충실하게 써냈던 여성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지하련 주택 모습

1940년 요양을 이유로 셋째 오빠 이상조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지상 2층 목조 가옥으로 거처를 옮긴다.

일본식 시멘트 기와지붕 양식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지난 2015년 한 차례 화재를 겪었다. 당시 살고 있던 사람들은 떠났고, 집만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하련 주택에는 아마도 시인 임화(1908~1953)가 드나들었을 것이다. 지하련과 임화는 물 좋고 공기 좋았던 마산에서 우연히 만난다. 지하련은 임화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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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련 주택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인적 드문 골목길을 벗어나자 중성동이다. 이곳 인도 위에 검은 비석이 하나 있다. 지나는 이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외로운 비석은 '허당 명도석 독립지사 생가터'를 알리는 돌이다.

허당 명도석(1885~1954)은 이름 앞에 호와 더불어 독립운동가·사회사업가·교육자·언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비석은 그를 '조선물산장려운동, 마산노동야학교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 '기미 만세시위 주도' '원동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독립자금을 해외로 송금' '의열단 경남조직 주재' '밀양 폭탄사건 주도' '신간회 결성과 지회장 활동' '건국준비위원회 마산 지회장'이란 말들로 장식한다.

허당 명도석 생가터를 알리는 비석

걸음을 재촉한다. 비탈길이 이어진다. 멀리 창원시립마산박물관과 문신미술관이 보인다. 추산동이다.

박물관·미술관 근처에 비석이 있다. '추산정 터'라는 이름과 '추산동 41-6번지 일대'라는 공간 설명, 그리고 '이곳은 대략 250~300년 전에 세워진 추산정이 있던 자리이다'는 한 줄 설명이 전부다.

추산은 고목이 우거져 있던 곳이라 전해진다. 공기는 맑고 서늘했기에 마산 사람들이 곧잘 찾아 더위를 식히고 여가를 즐기던 곳이었다.

추산정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리는 비석 하나

지역 문화공간 역할도 했다. 시인들은 이곳에서 시를 음미했고, 활쏘기·백일장·그네뛰기 행사가 이어졌다. 1960년에는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학생들이 모였던 장소이기도 했다.

추산정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 마산에서는 추산정이 운동의 시작점 역할을 했다. 김용환은 3월 3일 추산정에서 고종 국장 참관을 목적으로 모인 군중에 독립선언서를 나눠준다. 이어 추산정에 모인 지역 인사들은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해 3월 10일에 있었던 역사다.

그래서 비석 곳곳 공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추산정이 있던 자리'라는 한 줄 설명으로는 그 무엇도 연상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문신미술관 앞에서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마산만을 바라본다. 김주열이 차갑게 떠오른 바다,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민중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던 그 바다. 지금은 우뚝 솟은 건물에 시선을 뺏기는 마산만이다.

이날 걸은 거리 2.5㎞. 3935보. 독자와 함께 걸은 날.

문신미술관에서 마산만 방향으로 바라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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