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인 이상 감정적 선택 경향 나타나
타인 평가·검증 적극 반겨야 과학적

우리는 어떤 경우에 '과학적'이라고 할까?

과학은 사물의 현상에 관한 보편적 원리 및 법칙을 알아내는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일상에서 '과학적'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과학적 설명, 과학적 관리, 과학적 방법 등처럼 말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 타당적·합리적·이성적·논리적일 때 '과학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응용하는 과학기술자는 모든 일에 과학적일까? 과학기술자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논리적인 사고, 객관적인 예측 등을 하고 있을까? 필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사회학적 이론을 가져와 설명해 보고자 한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사회학·생리학적 견지에서 바라보고 그로 인한 결과를 규명하려는 경제학의 한 분야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취향에 변화가 없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론을 정립해 왔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이론을 살펴보자.

첫 번째로 사람들은 아직 소유하지 않은 것보다 이미 소유한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 아파트를 사고팔 적에 구입희망자보다 소유자의 호가가 더 높듯이, 자기 것에 대해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소유 효과'가 있다. 동일한 물건에 대해 동일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소유 효과는 살 때보다 팔 때 더 높게 평가하고 있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소유 효과는 과학기술자에게도 나타나는데, 자신의 연구결과가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소유욕이나 애착 때문에 타인과 대립하거나 갈등을 빚기도 한다.

두 번째로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하기보다는 손실을 싫어한다. 즉, 같은 금액이라면 손실을 이익보다 훨씬 더 크게 느낀다. 대니얼 카너먼의 실증 연구에 의하면 동일한 액수의 이익과 손실이 주는 쾌락과 고통의 비율이 1 대 2.25로 고통이 더 컸다고 한다. 1만 원의 손해를 상쇄하려면 1만 원이 아니라 2만 원 이상의 이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구개발(R&D)에서 성공하면 대박을 낳을 수 있는 위험스러운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실패 확률이 낮은 연구를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손실회피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세 번째, 사람들은 과거에 투입한 돈을 잊지 못하는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이 있다. 사람들은 돈이나 노력을 투입하면 그것을 지속하려는 성향이 있다.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의사결정이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과거에 얽매인 경우가 많다. 1970년대 프랑스와 영국이 합작 투자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높은 생산비, 기체 결함, 소음 문제 등으로 수요 전망이 매우 어두웠지만, 총 190억 달러를 계속 투자하다가 2003년에서야 운항을 중지한 바 있다. 이런 '매몰비용 오류' 때문에 전망 없는 연구 프로젝트에 계속 집착하거나 살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연구자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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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할 때 초기에 접한 정보에 집착하는 '정박 효과', 어떤 사안이 제시되는 방법에 따라 동일한 사안이라도 사람들의 해석이나 의사결정이 달라지는 '프레이밍 효과' 등 다양한 이론에서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과학기술자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을 연구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합리성이 부족한 의사결정, 감정적인 사고 등에 충분히 노출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기술자는 타인의 평가와 검증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반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적'인 연구를 하고 '과학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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