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서 경쟁에 지쳐 절망한 젊은이들
농촌으로 모여들 환경 만들어주세요

대통령님, 바쁜 일정 속에서도 봄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더구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앞으로 골치 아픈 나랏일이 잘 풀리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기쁘고 설렙니다.

저는 합천 황매산 자락 작은 산골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틈틈이 시를 쓰는 58년 개띠 서정홍이라 합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산골 농부가 쓴 이 편지가 대통령님께 전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님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 저는 소박한 감자꽃을 보고 싶어 한해도 거르지 않고 산밭에 감자를 심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산밭에 하얀 감자꽃이 피었습니다. 감자꽃을 볼 때마다 문득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떠오릅니다. 돈과 학벌과 뒷줄 따위가 먼저가 아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시던 분, 불가능한 그 꿈을 이루어야만 '사람 사는 세상'이 온다고 믿던 분, 권력과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서도 꿈을 버리지 못한 분, 못다 한 꿈을 가슴에 안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부가 되신 분, 못다 한 꿈조차 짓밟혀 쓸쓸하게 떠나신 분, 그분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분이 봉하 농부가 되었을 때, 합천 산골 농부 서너 명과 정자나무 아래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다가 제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틈을 내어 봉하 노무현 농부님한테 놀러 갈까요?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농부 노무현님과 하얀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밭에 둘러앉아 세상 걱정 내려놓고 막걸리 한잔하게요. 우리가 농사지은 감자 캐서 선물로 들고 가면 좋겠어요. 방문 날짜부터 잡읍시다. 제가 농부 노무현님께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런데 감자꽃이 피기도 전에 그분은 떠났습니다. 그날, 하도 서러워서 그분을 생각하며 '하얀 감자꽃 같은 그대'라는 제목으로 쓴 시입니다.

"하얀 감자꽃이/ 산밭을 물들였습니다// 오월이 가고/ 유월이 왔는데도/ 하얀 감자꽃은/ 피고 또 지고/ 지고 또 피고……// 하얀 감자꽃이/ 온 누리를 물들였습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도 그분을 보내지 않았으니, 그분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처럼 그분과 우리는 언제까지나 하나입니다. 하얀 감자꽃(그분) 향기는 2009년 5월 23일 그날처럼 2017년 5월 23일(8주기)에도 작은 산밭을 물들이고, 온 누리를 물들일 것입니다.

대통령님, 제가 이 편지를 쓰는 까닭은 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이루지 못한 농부의 꿈을, 문재인 대통령님과 이루고 싶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권농교서>에서 백성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게 하려면 농사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경쟁에 지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어둠과 절망이 가득한 농촌엔 수십 년 동안 젊은이 그림자조차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국가, 사회, 종교, 학교, 단체 들은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통령님, 간곡히 부탁합니다. 도시 청년 실업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농촌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신바람 나는 농촌을 만들어 주신다면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모여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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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바쁜 일정이 마무리되어 틈이 나시면 산골 농부들과 산밭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 하지 않으시렵니까? 봉하 쌀로 만든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농부 노무현님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목청껏 함께 부르다 보면 사는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그분이 좋아했던 상록수를 부르며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길 수 있도록…. 그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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