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버리고'반복되는 과정 속 회사도 성의를 보이기를

'취준생 일기'는 고단한 취업 전쟁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취업준비생 이지훈(26) 씨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소위 말하는 취업 전문가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잘하는 말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무직 상태로 있는 취업준비생들은 관련 업무를 익힐 기회가 없다. 그러다 보니 경험이 적고 직장에 가서 그때부터 배우면 되니, 지금은 '취업 스킬'을 기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취업 스킬이란 직장에 채용되기 위한 기술이다. 즉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잘 쓰고 면접에서 현명하게 대응하는 취업 행위 자체에 쓰이는 능력이다. 취업지원 관련 공공기관과 학원, 대학들은 열악한 취업 환경에 있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취업 스킬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 혹은 나름의 장소에서 열심히 갈고 닦은 노력과 실력보다 자신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방법에 서투른 이들에게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두 시간에 32만 원을 받고 취업 스킬 관련 수업을 운영하는 학원이 성행하고 자기소개서를 위한 맞춤법 강의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어려운 취업 환경이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취준생들 사이에 소모적인 나쁜 격차, 다시 말해 쓸데없는 곳에서 차별화를 이루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했다.

아마도 취업준비생이 되면 세상만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프로 불편러'가 되는 모양이다. 지금 이 시대만큼이나 청년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소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있었을까. 한 개인 속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특징이 있다. 더군다나 현재까지 알아온 자기 자신보다, 앞으로 변모하고 발견해나갈 것이 많은 시기가 20대다. 이런 이들에게 당장 종이 몇 장으로 자신을 정의해야만 하는 게 무척 아쉽다. 취준생 모두가 알기 어려운 자신을 파악하고자 노트북 앞에서 낑낑대는 철학가가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부정하면 나는 언제까지나 무직일 수밖에 없지 않나.

나는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공공기관 계약직이나 전공과 연관이 있는 회사 등 여러 곳에 지원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아이러니했다. 돈을 벌고자 취업 공부를 하는데, 그 공부 비용을 위해 또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 어쨌든 지원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시로 써보고 수차례 면접을 보기도 했다.

'자신감 넘치는 인사로 시작할까? 아니면 그냥 본론부터 써볼까? 자유형식인데 얼마나 자유롭게 쓰는 게 좋을까. 성장 과정과 학교생활을 따로 묻는데 어떻게 떼어내지? 솔직한 게 좋다는데 나는 일탈을 좋아해. 근데 회사 입장에선 싫겠지? 내 성과들을 일일이 써 놓으면 읽기 싫어질 수도 있을 거야.'

수많은 고뇌 속에 일주일에 한두 곳씩 대여섯 군데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써나갔다. 원서를 다 쓰고 연락해보니 채용이 무산된 곳도 있었다. 스트레스에 얼굴이 검어지고 자기소개서마다 써낸 자신의 모습이 다 달라 실제 나에게 여러 자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결과적으로 서류에서 떨어진 곳은 없었다. 동시에 내가 낸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읽어본 곳도 없었다. 여러 면접에서 듣게 된 질문은 황당하게 느껴질 만큼 자기소개서에 명명백백하게 써둔 사실이었고 재차 묻는 것이라고 하기엔 내가 꺼내는 말마다 처음 듣는 일이라는 면접관의 반응을 지켜봐야 했다. 채용이 다 되어서 부른 줄 알고 아는 직원과 "잘 계셨냐"며 한바탕 친한 척을 했는데, 대기실로 들어오는 다른 채용 지원자를 보며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적도 있다. 업무와 관련된 내 경력이 해가 된다는 면접관에게 웃어 보일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자기소개'는 끝이 났다.

앞으로 살아남기 위한 포장 방식은 날로 발전해 갈 것이다. 여러 차례 입사 시험과 면접을 치르며 가장 좋았던 점은 나 자신을 글과 말로 정의해 보고 취업 전쟁에서 뒷순위에 있는 것은 도려내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눈에 띄는 큰 틈이 무엇인지 알고 채우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정말 궁금한 것도 한 가지 생겨났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재를 뽑으려고 채용 공고를 낸 회사에서는 과연 얼마나 성실하고 절실하게 지원자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하는 일 말이다.

/이지훈(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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