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이다]농민 허진도 씨, 청년 전기공 권오선 씨가 바라는 세상

촛불 민심의 요구인 적폐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우리 사회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쏟아질 것으로도 예측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창간 18주년을 맞아 농민과 중소기업 노동자가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를 들어봤습니다.

농민 허진도 씨가 들여다본 농업정책

농민들은 문재인(더불어민주당) 대통령이 제시한 농업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창녕군에서 마늘·양파 농사와 함께 쌀 농사도 짓는 농민 허진도(55·창녕군 퇴천리) 씨를 만나 문 대통령 농업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 들어봤다.

문 대통령 선거공보에 적힌 농업 공약은 다섯 가지다. ①물가인상률 반영해 '쌀 목표 가격 인상' ②강력한 '생산조정제' 시행 ③소비 확대 통한 '쌀 생산비 보장' ④공공급식 확대와 학교 과일 간식·급식 시행 ⑤농지은행의 농지 매입으로 청년농·귀농인·소농민에게 저렴한 공공임대 농지 보장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농업 정책을 진단한 허진도 전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창녕군회장. /이수경 기자

-앞 세 가지 공약은 모두 쌀 가격과 관련한 문제들이다.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

"생산조정제 강력 시행을 적극 찬성한다. 반드시 이뤄져야 할 최우선 정책이다. 쌀 자체가 남아돌고 있다. 식탁용 쌀과 사료용 쌀을 구분해 생산해서 쌀 재고를 없애는 방향을 고민해봐야 한다. 논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당 일정액을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쌀 직접지불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다른 작물도 직불제로 보전해줘야 한다."

-쌀값이 하락하는 것을 막고자 요즘 조기 재배를 하는 농민들이 많다. 조기 재배하면 가격 차이가 많이 나나.

"조기 재배를 하는 농가가 많아지고 있다. 햅쌀을 빨리 수확해 시중에 내놓으려고 조기 재배를 하는 것이다. 조기 재배한 햅쌀은 1만 원 정도 더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이익이다."

-하지만 조기 재배 농가가 계속 늘어나면 또다시 쌀값이 내릴 텐데.

"그렇다. 농민들이 잘되는 농사 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조기 재배 역시 쌀값이 다시 내리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마늘·양파 농사도 마찬가지다. 농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농업 정책을 진단한 허진도 전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창녕군회장. /이수경 기자

-소비를 확대해 쌀 생산비를 보장하겠다는 정책은 현실적인가.

"의무수입물량이 늘어나니까 국내 쌀 소비가 커지지 않는다. 수입 쌀 사용을 강력히 규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특히 쌀을 가공해서 수출할 방법을 계속 찾고, 시중에 판매되는 쌀 제품에 국내 쌀을 30%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규제를 해주면 좋겠다."

-공공 급식 확대와 학교 과일 간식·급식 시행 공약은 농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될 것 같나.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농산물과 쌀을 급식에 활용하면 소비도 늘고 건강에도 좋다. 우리나라 전통 술을 만드는 데도 의무수입물량 쌀이 50% 이상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 술, 빵, 과자, 국수를 만들 때 우리 쌀을 활용해 대중음식을 개발하라고 장려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농지은행이 농지를 매입해 공공임대 농지를 보장해주는 정책은 어떤가.

"농지 가격이 비싸다. 현 시가로 농지를 사서 농사지으면 답이 안 나온다. 농지은행에서 예산을 확보해 농민들에게 최대한 지원해줘야 한다. 하지만 농지는 한정돼 있고, 기존 농민은 대농인 반면 청년농과 귀농인들은 소농이라 또 다른 갈등 요소가 있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설치도 공약했다.

"이전에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창녕연합회장을 맡았었다. 대통령이 제시한 공약을 주시하고 있다. 한농연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외청으로 '식품안전청'을 신설하고, 농업정책비서관 직책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속에 이 부분이 반영되길 기대한다."

-대통령 공약에 포함되지 않은 것 중 농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은 뭔지 말해달라.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서 국산 농축수산물은 예외로 인정해주면 좋겠다. 이 법 때문에 농민들은 너무 힘들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 땐 농민에게 신경 쓰다가 대통령 되고 나면 뒷전으로 밀리는 행태를 농민들은 정권 출범 때마다 경험했다. 현실적인 농산물안정화 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행정)·농협·생산자가 자주 모여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고 문제점을 잘 살펴 신속히 개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청년 전기공 권오선 씨가 바라는 세상

이 땅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삶은 암울하다.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겪는 불안이다. 그런 삶을 바꿔보고자, 인간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 촛불광장에서 타올랐다. 그런 염원이 대통령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권오선(25) 씨가 스무 살 때부터 전기공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자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에게 그런 삶을 살게 했다. 앞은 캄캄한데 등록금 빚을 쌓아가면서 대학을 더 다닐 수 없었고, 직업학교에 다니며 전기기술을 익혀 취직했지만 최저임금을 받아 겨우 삶을 지탱해왔다.

'N포 세대'로 대변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가 되길 바라는 전기공 권오선 씨. /박일호 기자 iris15@

그는 지난해 10월말부터 특근수당을 포기하고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불평등한 세상을 바꿀 기회라 봤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이 사회가 제대로 드러났고 내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라 생각했다. 광장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걸 보고 흥분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광장에 사람들이 줄고, 목소리가 가라앉는 걸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기도 했다. 세금 떼고 한 달 120만 원 정도 받는데 출퇴근 차량 기름값과 유지비 40만 원, 방세 30만 원, 공과금과 식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그러면서 그는 "삶의 미래도 안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이런 이야기 하면 속에서 뭔가 올라온다. '내가 왜 이런 슬픔을 느껴야 하지?' 정말 서럽고 안타깝고 슬픈 감정들인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이대로 20년, 30년 살아라고 하면 못살 것 같다"고 했었다.

그의 발언은 영상으로 퍼지면서 많은 공감을 받았었다. 당시 그는 대통령 한 사람 물러나는 게 끝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렇지 않으냐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오선 씨 삶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들 평균이라 할 수 없지만 '헬조선', 연애·결혼·출산·꿈 등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를 대변한다. 그는 가장 절망했을 때를 이렇게 말했다. "진짜 힘든 거는 '빡시게' 살면 이런 삶이 나아질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오선 씨는 지난달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기산업기사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독학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술자로서 경력을 쌓아 지금보다 풍족하고 안정된 삶을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는 그게 답이 아니란 걸 안다. "돈이나 안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대접을 받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오력'하면 더 잘사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내 친구들, 더 많은 사람의 삶은 어떻게 할 거냐는 생각도 한다."

'N포 세대'로 대변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가 되길 바라는 전기공 권오선 씨. /박일호 기자 iris15@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다니던 회사에서 산업재해와 해고를 당하면서 겪었던 불안감과 수모, 정규직인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출산·육아·교육, 주택마련에 불안한 삶을 살고 있고, 한순간 '잘리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선 씨는 "불평등이 너무 심하다. 세대를 기준으로 불평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기성세대도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노동자는 전 재산인 몸뚱어리가 고장 나면 사회 밑바닥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에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부가 재벌이나 몇몇 소수에게 집중된 세상이 아니라 사회를 일군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세상을 바란다. "월세 안 나가는 전셋집을 얻는 게 개인적인 희망이지만, 누구는 집을 몇 채 소유하고, 다수는 무주택자라는 것도 모순이다. 이런 불쾌감 없이 살고 싶다. 촛불을 든 사람들의 핵심 요구가 불평등 해소다. 새 정부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뭉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할 때 억압하는 게 아니라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는 촛불광장에서도 경험했고, 역사가 그러했듯이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변화의 의지를 품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진실을 믿는다. "내 삶을 바꾸려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한 곳에서, 일터에서 내 권리를 찾고 우리가 어떻게 주권자로서 권력을 찾을 것인지. 그런 노력을 같이해갔으면 좋겠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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