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이다]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
특권 내려놓기·소통·통합 등 새 대한민국 염원으로
참여정부 한계 극복 '문재인표' 길 걷고 보여줘야

5월 10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7개월여 동안 한국 사회는 격랑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무질서하지는 않았다. 그 중심에는 질서 정연한 '촛불'이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의 탄생은 1차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기인했다. 집회 현장에서 넘쳐났던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은 새로운 정치체제의 출현을 바라는 마음으로 번졌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기간 내내 "나라를 나라답게"라고 외친 건 촛불 민심을 정확히 꿰뚫은 구호라 할 수 있다.

◇ 촛불에서 대선까지…민심은 어디로 향했나

촛불은 지난해 10월 말 타오르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한 흔적이 있는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공개되면서였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의 비리 의혹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세상에 공개된 최순실의 국정 개입 증거는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촛불의 기세는 그동안 관행처럼 행해졌던 권력의 특권과 반칙에 대해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여실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권력은 반성할 줄 몰랐다. 2016년 11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100만 명의 국민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담화문만 계속 내놓을 뿐이었다. 그럴수록 분노는 더 커졌다. 11월 26일 190만 명이 모인 데 이어, 12월 3일에는 230만 명이 집결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그 힘은 12월 9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표결을 추동했고, 결국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가결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3월 31일 구속됐다.

촛불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만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 대안이 무엇이고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를 제시했다.

짧게는 참혹하다 못해 황망하기까지 했던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더 멀게는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불통의 권력을 목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어지고 있었던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이었던 셈이다.

이는 방송 3사가 출구조사를 진행하면서 병행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투표 당일 전국 63개 투표소에서 약 3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면접 조사에서 응답자의 74.3%가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후보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는 38.1%가 '최순실 국정농단'을, 37.5%가 '박 전 대통령의 불법적 국정 운영'을 꼽았다. 무려 75.6%의 유권자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투표를 통해 물은 것이다.

이 같은 수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득표율을 제외한 4명의 주요 후보가 얻은 득표율과 거의 일치한다. 이 외에도 '세월호 7시간 행적', '정유라 부정 입학' 등이 투표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 거론됐다.

투표한 후보를 지지한 이유도 흥미롭다. 20.7%가 '부패와 비리를 청산할 수 있어서'라고 응답했고, '경제성장과 발전에 적임자라서'가 19.6%를 차지했다. 또한 '도덕적이고 깨끗한 인물이라서' 19.3%, '국민 통합을 잘 이룰 수 있어서' 18.1%, '안보와 외교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어서' 15.9% 순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가장 큰 요인은 이러한 촛불 민심을 잘 받아 안았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리고 당내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수권 정당으로서 안정성을 보여온 점도 주효했다.

◇ 촛불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는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대통령 취임 선언식에서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다"고 첫 일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특권 내려놓기, 소통, 통합 등을 거론하며 촛불 민심이 제시한 길을 충실하게 걷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선 과정에서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자유한국당 등 야권의 정치 공세를 견뎌내야 한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벌써 문재인 정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문재인' 그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다. 이는 곧 참여정부를 넘어서는 일과 맥을 같이한다. 또한 그 실재 여부를 떠나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 측으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친문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양산과 양극화 가속화 조짐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 참여정부 책임 역시 문 대통령에게 짐으로 남아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이 분단된 국가가 아니고, 이명박·박근혜의 굴절된 정치가 없었다면 아마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이 제기한 의제가 시대적 과제가 되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우회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다시 민주주의와 공정한 나라 건설이라는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심상정 후보를 향해 '실현 가능한 노동·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유승민 후보로부터는 공공일자리 창출 정책이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역시 원론적인 대책에 그쳤다는 평가 또한 받고 있다.

대선 투표 출구조사 심층면접에서 드러났듯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투표를 통해 물은 유권자는 75.6%에 달하지만, 문 대통령이 획득한 득표율은 41.1%였다. 문 대통령이 '촛불 대통령'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촛불 민심이 모두 문 대통령에게로 쏠리지 않았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촛불이 제시한 길'이 명확하고 뚜렷한 것만은 아니다. 이제 그 길 또한 문 대통령이 열어주고 보여줘야 할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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