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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인혁당·세월호…정의 편 섰던 인권 변호사

거제서 피란민 아들로 태어나 부산서 초·중·고교 나와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 입학
유신 반대 시위·구속·특전사 경력
격동의 시절 후 노무현 만나 참여정부 도와
보복·대선 패배 아픔 딛고 19대 대통령으로 이름 올려

민병욱 기자 min@idomin.com 2017년 05월 10일 수요일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그 위대한 여정을 오늘 시작합니다."(4월 3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문 중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연설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대선 재수생' '풍부한 국정 경험' 등을 내세우며 '준비된 대통령'을 강조한 문 대통령은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8년 노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청와대를 나오고 나서 9년 만에 다시 대통령으로서 재입성하게 됐다.

◇'마지막 비서실장'에서 다시 청와대 주인으로 = 문 대통령은 1953년 거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피란민이었고,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못했다. 출생지는 거제지만, 남항초교, 경남중, 경남고 등 초중고교는 모두 부산에서 나왔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와 담임 뜻대로 서울대 상대에 응시했다가 낙방한다. 이후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학과 4년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문 대통령이 대학에 입학한 1972년은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 선포와 함께 민주주의 억압이 노골화되던 해였다. 불의에 맞서던 문 대통령은 1975년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 사형을 당하자, 다음날 사법살인에 항의하는 대규모 학내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되고 결국 강제징집 당한다. 이후 창원 39사단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뒤 특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에 배치된다. 공중낙하, 수중침투 등을 치러낸 '특A급' 사병이었다.

문 대통령의 특전사 시절 모습

31개월 만기 제대한 문 대통령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법시험 길로 접어든다. 집안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다. 이후 국내 최대 로펌의 파격적인 제안을 뿌리치고 부산으로 향한다. 억울한 사람을 대변하는 변호인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노무현과 운명적인 만남 = 부산에서 마침내 노 전 대통령과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깨끗한 변호사'가 되기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선후배로, 친구처럼 함께 일하며 신뢰를 쌓아나갔다. 법률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며 1980년대 부산·경남 등에서 노동, 인권, 시국 사건 변론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법률사무소는 부산은 물론 인근 창원과 울산, 거제 등 지역 '노동인권사건'을 총괄하는 사실상 센터 역할을 하게 된다.

2003년 참여정부 때는 두 차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마지막 비서실장'까지 참여정부 출범과 마감을 노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2007년에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아 회담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킨다.

1987년 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모습.

참여정부와 임기를 함께 마친 문 대통령은 양산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으로 위기에 몰린 이명박 정권이 탈출구로 '정치보복'을 선택한 탓이다. 정치보복은 결국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끝났다. 노 전 대통령 장례 과정에서 상주였던 문 대통령의 절제력과 의연함이 시민들에게 각인되면서 새로운 정치인 '문재인'이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이후 문 대통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했고, 총선 승리 두 달 뒤 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한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13번 모두 1등을 차지하며 단숨에 대통령 후보가 됐고, 안철수·심상정 후보와 단일화에도 성공, 명실상부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1400여만 표, 득표율 48%를 기록했다. 야권 대선후보 역대 최고 득표수와 득표율이었다. 하지만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박근혜 후보를 넘어서진 못했다. 아쉬운 패배였다.

2007년 청와대 본관을 나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대선 패배 이후 문 대통령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되새겼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문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 씨와 동조 단식을 한다. 이때 야당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을 받던 새정치민주연합을 쇄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2015년 초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선출돼 당 대표직을 10개월가량 수행한다. 하지만 재보선 패배,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한 몇몇 의원 탈당 등으로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기도 했다. '친문(親文·친문재인) 패권주의'에 대한 비난도 거셌다. 이후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다양한 분야 인재 영입으로 지난해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민주당이 123석을 차지하면서 제1당이 됐다. '문재인 위기론'이 대세론으로 뒤집어졌다.

지난 2011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자신이 쓴 책을 헌정하는 문재인 대통령./경남도민일보 DB

◇정권교체 성공 = 대통령 탄핵과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어수선한 올해 초,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의 사자성어 '재조산하(再造山河)'를 내세우며 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파죽지세', 지난달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도 누적 과반 득표를 얻으며 결선 투표 없이 본선으로 직행했다.

문 대통령은 막판 '보수 결집'을 등에 업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며 마침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는 대선 출마를 하면서 "정권교체의 삽이 되고, 적폐청산의 벽을 깨는 망치가 되고, 정의로운 반석을 다지는 곡괭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시대를 향한 그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2012년 전북도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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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 기자

    • 민병욱 기자
  • 2018년 7월 13일부터 경남도의회, 정당 등 맡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보도자료, 구독신청 등등 대환영입니다. 010-5159-9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