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병원·아파트 단지 등
공공 장소에 조각·회화 전시
건축비 1% 문화향유 사용 의무
"시민 스스로 공공재 인식 부족”

건물을 지으면 미술품이 생긴다. 법으로 명시한 '건축물 미술작품'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는 1만㎡(약 3025평) 이상 신·증축하는 건축물에 회화, 조각, 공예 등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건축주가 건축 비용의 1% 이하 범위로 미술품을 선택해 세우거나 내걸어야 한다. 아니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내도록 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 골자는 건축비용 일부를 의무적으로 문화향유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현재 경남 곳곳이 공사판이다. 창원, 진주, 양산 등에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고 대형 상가가 문을 열고 있다. 곧 미술작품도 우리를 맞는다.

◇공공미술이 된 건축물 미술작품 = 왜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 설치를 강제했을까?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미술장식 설치'를 권장했다. 건축물에 문화적 이미지를 부여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문화 향유에 대한 가치와 사회적 합의가 점차 활발해졌고 1982년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 조항'이 신설됐다. 1995년에는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선정되며 의무 사항으로 개정됐다.

양산 한 아파트에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 김명수 작 '가족 즐거운 형상 이야기'./이미지 기자

또 2011년 법령 속 '미술장식'이라는 용어가 '미술작품'으로 변경되며 공공미술로 개념이 바뀌었다.

건축물 미술작품은 공공 공간을 예술적으로 조성해 지역민이 예술 체험을 가까이서 하고 예술가에게 창작 기회를 주고 넓게는 기업의 메세나(기업이 문화예술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운동) 활동을 장려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경남 997개…조각·회화 많다 = 건축물 미술작품은 전국에 1만 5000여 점이 있다. 경남도에는 997점이 설치됐다. 아파트단지, 대형마트 앞, 빌딩 입구, 대형병원 로비 등에 있다.

건축물 미술작품은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공공미술포털(http://www.publicart.or.kr)에서 검색하면 우리 집 주변 현황을 쉽게 알 수 있다.

공공미술포털은 매일 자료를 갱신한다. 전국 시·도지사가 건축주에게 미술작품 설치의무를 고지하면 건축주는 미술작품 계획을 수립해 감정·평가 신청을 한다. 시·도는 조례에 따라 구성된 미술작품심의위원회에서 미술작품 가격과 예술성 등을 감정·평가해 사용승인한다. 이후 시·도가 공공미술포털에 관련 정보를 기록한다.

공공미술포털에 따르면 5월 현재 창원시에 건축물 미술작품이 316점으로 도내에서 가장 많다. 조각이 273점으로 압도적이다. 회화 36점, 사진 1점 등이다.

진주의 한 대형쇼핑몰에 설치된 미술작품. 국경오 작 'K대리의 퇴근길'./이미지 기자

다음으로 김해 170점, 진주 168점, 거제 102점 순이다.

최근에 설치된 작품을 창원시 중심으로 살펴보면 조각은 지난해 11월 의창구 북면 감계 힐스테이트 4차에 도영준 작가 '별이 내려앉다'가 설치됐다. 성산구 중앙동 블루힐스 오피스텔 앞에 이명림 작가의 '블루힐스, 성장의 나무'가 세워졌다. 또 의창구 북면 동전 월드메르디앙에 박종태 작가 '꽃피는 날'이 선보였다.

대부분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지역을 중심으로 새 미술품이 생겨났다.

창원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올해 5곳에 미술작품이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다. 모두 공동주택 부지다"고 설명하며 "기금 출연은 드물다. 최근 삼성창원병원이 건물을 증축하면서 기금을 냈다"고 말했다.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건축물 미술작품을 공공미술로 분류했지만 낮은 인지도와 방치된 작품, 시·군의 무관심한 행정은 개선해야 할 과제다.

진주시 도시과 관계자는 "시 입장에서 건축주가 기금을 내지 않고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게 좋다. 도시에 미술품이 늘어나서다. 하지만 시민들이 빌딩 앞에 세워진 작품을 우리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쉬운 대목이다"고 했다.

성낙우 작가는 창원의 한 아파트에 벽화를 만들면서 "왕래가 많은 곳에 설치했다. 자연과 인간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빛의 조화가 주제다. 매일 바쁘게 변해가는 이 도시의 형상을 현대화했다. 우리의 정서를 되돌려 줄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예술가의 의도대로 지역민이 누리고 시민 나름대로 즐긴다면 건축물 미술작품 1만 5000여 점은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문화가 된다.

서울시가 이에 대한 고민이 깊다.

서울시는 '공공미술 시민발굴단'을 운영한다. 시민이 직접 생활 속에 숨겨진 우수 공공미술작품을 발굴해 알리는 작업을 한다. 미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 100명이 참여했고 올해는 120명이 활동한다.

양산의 한 대학병원에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 /이미지 기자

이들은 공공미술은 꼭 필요한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것인가, 공공미술작품은 영구적이어야 하는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서울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정부는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제도를 관리, 유지하고 있다. 곳곳에 세워진 미술작품으로 의미 있는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지자체의 몫이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창원에서 도시탐방단 길잡이를 맡아 공공미술을 조사한 황무현 조각가는 "공공적인 장소를 점유하는 미술장식품, 공공조형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었다.

올해로 도시 환경에 의무적으로 문화적 이미지를 입힌 지 22년.

거리마다 미술작품이 천지고 공공미술이 바로 내 옆에 있게 됐다. 여기에다 공익성을 더한다면 지역사회의 문화적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다.

진주 대형쇼핑몰에 설치된 강준호 작 '퓨처앤비전'./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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