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기성 삭감 등 '좌지우지'
하청 노동조건 구조적 열악
19대국회 발의 법안 결실 못 봐
기업처벌법 제정 등 시급

'위험의 외주화.' 이 끔찍한 사슬은 어떻게 해야 끊길까. 지난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어난 크레인 붕괴 사고로 숨진 이는 모두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원청보다 8배 높은 하청 산재 사망률 = 다단계 하청이 흔한 조선업종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번에 사고가 난 삼성중 거제조선소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난 15년간 산재 사망 노동자는 3만 5968명, 재해자는 136만 3293명이었다. 해마다 2398명, 하루 7명꼴로 산재로 숨지는 셈이다.

위험은 하청 노동자에게 특히 집중된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달 11일 발표한 조선·철강·자동차·화학 등 51개 원청사 대상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기준 노동자 1만 명당 산재로 숨진 노동자는 사내 하청이 0.39명, 원청이 0.05명으로 사내 하청이 8배 높았다. 조선업으로만 국한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국내 조선업 대형 3사(현대·대우·삼성)에서 37명이 산재로 숨졌다. 이 가운데 협력업체 노동자는 29명(78%)이고 원청 노동자는 8명(22%)이었다.

노동자 31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2일 오전 김효섭 거제조선소장이 사고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안전조치 꿈도 못 꾸는 '살인 일정' = 이처럼 협력업체 노동자가 위험에 내몰리는 것은 무리한 기성 삭감과 관련이 있다. 기성은 하도급 대금 일종으로, 투입된 인원·작업 시간 등을 계산해 원청이 하청에 주는 공사비를 말한다. 노무비, 자재비 등이 포함되는데 기성이 낮으면 인건비를 아낄 수밖에 없다. 기성을 절반으로 삭감하면 작업시간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빡빡한 공정 일정에 안전시설을 갖추고 안전수칙에 맞춰 일을 하는 건 당연히 상상할 수도 없다. 왜냐면 원청에서 요구하는 공정 기일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삼성중 거제조선소 상황도 비슷했다. 해양플랫폼 납기일을 맞추고자 노동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김경습 삼성중 일반노조 위원장도 "6월까지 공기를 맞추기 위해 촉박하게 작업했다"며 "공정을 순차적으로 하지 않고 이것저것 섞여 진행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원청이 처벌되는 경우는 드물다. 산재 예방에 드는 비용뿐 아니라 사고에 대한 책임, 처벌까지도 하청에 떠넘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2011~2015년) 국내 주요 30개 기업 중대재해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원청에 대한 법원 최종 처분은 징역 1건, 집행유예 8건, 불기소·기소유예 43건, 벌금형 106건, 혐의없음 38건이었다. 그야말로 '솜방망이'다.

◇'가장 잔인한 차별' 끊을 대책은 = 노동계는 원청 책임 강화와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그동안 정치권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법안을 발의했으나 결실은 맺지 못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자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이 발의돼 환경노동위원회·법안심사소위 등을 거쳤으나 본회의에 회부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3개 법안 모두 개정안 취지는 타당하다고 인정됐다. 유해·위험 작업의 사내 도급 원칙적 금지를 담은 한정애 의원안은 경영권 침해와 지도·감독 또는 사고 발생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우려로, 유해 화학물질 취급을 도급인가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심상정 의원안은 관련 취지의 법이 이미 존재하고 도급인가 대상 확대가 과다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본회의에 올라가지 못했다. 유해·위험 작업 도급 전면 금지를 규정한 김성동 의원안은 관련 산업 또는 업종·관계 종사자 고용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우려된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아울러 산재를 은폐하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진호 민주노총 경남본부 사무처장은 "얼마 전 산재를 은폐한 사업주 등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이 신설되고 처벌이 강화됐지만 아직도 경미한 사고는 산재 처리를 하지 않고 공상처리를 하라고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며 "병원 산재 신고 제도 도입 등 지도·감시를 강화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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