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더니 햇살이 제법 따갑다. 도타워진 봄볕에 바다는 졸음처럼 옅은 안개가 깔리고 한적한 어촌 마을 낮은 지붕 위로 아지랑이 아른거린다. 거제면 법동에서 한산도를 마주 보는 뾰족하고 가파른 곶 아래 아지랑 마을을 지나 남국 바다 봄바람에 벚꽃 구름을 타고 둥실 아지랑이재를 넘으면 둔덕면 어구리다. 어구는 둔덕면에서 가장 남쪽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숫자 중 가장 끝수인 아홉 구(九)에다 위치를 가리키는 어조사 어(於)를 써서 어구(於九)라 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고려 의종이 무기를 만들어 보관하면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여 외인금이라고 했다. 어구 마을은 모든 갯마을에 꼭 있어야 할 방파제가 없다. 송도, 좌도, 비산도, 한산도, 화도, 소록도 등이 점점이 마을을 호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와 같은 이름의 소록도를 이곳에서는 딴녹섬이라 부른다. 원래 맞은편 녹산리에 인접한 섬이라 녹산리 소록도였다.

어느 해 이 섬에 큰불이 났더란다. 멀리 떨어져 있던 어구 사람들은 배를 타고 건너가 불을 끄느라 야단법석을 떠는데 정작 코앞에 있던 녹산 사람들은 그저 팔짱만 끼고 말 그대로 강 건너 아니 진짜로 바다 건너 불구경했다나? 나라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는 섬을 녹산리에서 뺏어 어구리로 편입시켜 버렸다. 이후 사람들이 어구가 녹산에서 따먹은 소록도라 하여 딴녹섬이라 불렀다. 크고 작은 섬들이 병풍처럼 펼쳐진 바다는 호수같이 잔잔하다. 덕분에 파도는 없으나 섬과 섬 사이 좁은 물길로 빠르게 새로운 물이 들고나기에 수심이 깊은데도 바다는 바닥까지 항상 환하게 맑고 깨끗하다. 갯것을 양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더구나 인근 통영이나 고성에는 큰 강이 없어 수온이 안정적이고 여름철 고온 우기에 뭍에서 대량의 민물이 흘러들지 않아 적조 피해도 적은 편이다. 바닥까지 햇빛이 들어가 해초가 무성하고 갯벌은 플랑크톤 코페포드와 알테미아가 번식하기 좋아 굴이나 멍게 그리고 여러 물고기 치어 먹잇감이 풍부하다. 거제 남부면 쌍근마을에서 이곳을 지나 통영 앞바다까지는 양식장으로 천혜를 누리는 곳이라 한다. 딴녹섬과 방답마을 방조제 사이 굴 채묘 양식장에서부터 시작해 바다 곳곳에 각종 양식장의 부표와 시설들이 떠 있다.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어구(魚口)라고 불러달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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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메나 괴기가 잘 잡히는지 비루먹은 개 꼬랑지를 담가 저어도 입을 딱딱 벌리고 달라든께 어구(魚口)가 맞다 아이가."

김, 미역 등 해초류 양식장에서부터 굴과 멍게 양식장과 농어, 볼락, 쥐치, 참돔, 광어, 감성돔, 전어, 노래미 등을 기르는 가두리 양식장과 육상 양식장까지 못 기르는 게 없다. 남해 용왕 빼고는 다 있단다. 그러나 자연을 상대로 살아가는 삶은 그리 녹록하진 않다. 들과 산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는 일이나 바다에 종패를 내리고 물고기를 돌보는 일이 다를 바 없다. 가뭄과 홍수, 바람과 파도에 무너지기도 하고 온갖 병충해와 적조에 시달려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농부나 어부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식같이 키운 것을 내다 팔아 돈 사는 일이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끼고 우두며 알토란같이 만들어 내놓았더니 올해는 작황이 너무 좋아 똥금이란다. 흉년이 들어 쭉정이 판에 몇 톨 겨우 건져 내놨더니 가격이 높아 서민 살림 거덜 난다고 수입산 풀어먹인단다. 이래도 쪽박 저래도 깡통 차는 판인데 가장 기가 막히는 건 똥금이라고 사료로 만드는 농어 볼락과 밭에서 갈아엎는 양파 호박이 마트에서는 버젓이 제값 치르고 아파트 이집 저집 저녁 밥상에 오른다는 것이다. 어구 마을도 다를 바 없었으리라. 이에 십여 년 전 활로를 찾던 중 마침 정보화마을로 선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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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두리 양식장. / 박보근 노동자

정보화마을을 간단히 말하면 농어촌지역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이다. 농촌, 어촌 그리고 산촌과 같이 정보화에 소외된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이용환경 조성과 전자상거래와 정보콘텐츠를 구축하여 지역주민의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를 통해 발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행정자치부에서 주도하여 시행하는 사업이다. 참고로 정보화마을이 생산한 농수산물을 값싸게 직거래로 구입하려면 정보화마을 홈페이지(www.invil.org)로 접속해 검색하면 된다. 홈페이지의 'invil'은 'Information Network Villag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마을 가운데 세워놓은 안내문에 적힌 정보화마을 이름이 '어구 낚시 체험 마을'이라 적혀 있다. 정보화마을에 선정되려면 주 생산 품목과 체험 활동 같은 중점 사업을 정해야 한다. 어구 마을에는 주로 굴과 멍게 그리고 젓갈류와 액젓을 직거래한다. 체험 활동 사업으로 바지락 캐기 체험과 낚시 체험을 한다. 생태 체험 마을이나 갯벌 체험, 산촌이나 농촌 체험 마을은 많이 듣고 가서 체험도 해봤지만 낚시 체험 마을은 처음 듣는 소리다. 정보화마을 관리자 강정희 씨는 낚시 체험으로는 처음 선정된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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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두리 양식장. / 박보근 노동자

여가를 내 낚시를 한 번 나서자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낚시 장비 손질하는 것부터 미끼와 떡밥 준비며 이것저것 채비하고 나서면 이미 반나절이 후딱 간다. 그렇다고 쉽게 가자 해서 실내 낚시터를 찾아 수조에 풀어 넣은 양식 고기를 낚는 건 화투패에 표시해놓고 치는 고스톱처럼 싱겁다. 낚시터에 도착해서도 어느 정도 수준의 꾼이 아니라면 낚시채비를 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물때나 어종에 따라 노는 깊이와 장소도 모르니 허구한 날 장만해간 미끼만 고기들에게 보시 공덕을 베풀고 라면이나 끓여 먹는 공수래공수거 한다. 탁 트인 바닷가에서 재미있는 휴일을 보내거나 낭만적인 추억을 만들려던 가족들이 두 번 다시는 낚시터에 따라나서지 않는다. 대짜 참돔이나 한 마리 폼 나게 낚아 노을빛에 물든 바닷가에서 너 한 입, 나 한 입 건네줄 회 한 점은 어디로 갔는지 하루 종일 따먹힌 빈 찌만 눈이 빠지게 보거나 퐁당퐁당 거리고 앉았다. 이러니 차 안에서 하릴없이 뒹굴다 빈속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이 두 번 다시 따라나서겠나. 어구 낚시 체험 마을에서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함께 즐기고 낭만적인 바다낚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반 낚싯배도 운영하지만 선외기와 전마선 그리고 해상 콘도형 바지선을 이용한 낚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체험 시설을 이용하면 우선 비싼 낚시 장비가 필요 없고 번거롭게 미끼나 떡밥을 준비할 필요도 없이 몸만 오면 된다. 낚시 장비는 물론 미끼와 떡밥까지 준비되어 있으며 채비를 차리고 고기를 낚는 법까지 함께 승선하는 담당자들이 가르쳐 주며 좋은 포인트로 직접 안내해 준다. 선외기 체험은 작은 모터가 달린 동력선으로 잘 잡히는 갯바위나 제법 먼 바다까지 나가 대물의 손맛을 기대할 수 있다. 낭만을 즐기시려는 연인들은 무동력선으로 양식장 주변이나 가까운 바다에서 하는 전마선 체험이 제격이다. 가족이나 친구들 여럿이라면 숙박 시설까지 갖춘 해상 콘도형 체험 시설이 좋겠다. 바지락 캐기 체험 갯벌에는 바지락뿐만 아니라 자연산 굴이며 고둥, 소라에 해초류까지 지천으로 널렸다. 그런데 낚시 체험이니 우선 고기가 잘 낚여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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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지락 캐기 체험. / 박보근 노동자

"어르신, 여기에 고기는 좀 잡힙니꺼?"

"여게가 서울 명동 아이가."

"네? 그기 무슨 소린교?"

"거 젊은 사람 말귀가 장수만셀세. 아 서울 명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람 많이 지나 댕기는 골목 아이가. 이 바다가 물괴기들 명동이란 말이다."

"아! 그라모 광화문 광장이 더 많다 아입니꺼."

"문디… 니는 토욜마 괴기 잡나!"

바깥 난바다에서 산란을 위해 수심이 얕은 고성, 마산, 진해 든바다로 드나드는 물고기들이 지나는 길목이라 어종도 다양하고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씀이시다. 뼈 빠지게 생산하고도 유통이나 정부 시책으로 젖은 땅이 먼지 일도록 한숨만 쉬고 나앉은 마을이 아니었다. 정보화 사업으로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를 이웃으로 끌어들였다. 그렇게 맺어진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알리면서 다양하게 활로를 모색하여 성공한 생기 넘치는 마을이었다.

한산섬 위로 펼쳐지는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에 만선 깃발을 펄럭이는 배 한 척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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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구 낚시 마을. / 박보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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