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주의 작은 영화] (1) 흑인영화
1920년부터 오늘날까지 흑인 권리·자유 쟁취코자 100여 년 힘보탠 할리우드
비폭력행진·법정 싸움 등 지난날 아픔 되새겨 가며 '사회적 행동' 불러일으켜

새 연재 '조정주의 작은 영화'를 쓰는 조정주 씨는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그의 시선은 주로 제작비가 많이 든 대작 영화보다는, 소소하면서도 생각거리 많은 '작은 영화'를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영화를 통한 성찰'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이 연재는 한 달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아이들은 공을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모여들었다. 카메라는 가운데 주저앉아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화면을 보고 있는데 순간 섬광 같은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공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달랐다. 두꺼운 입술과 얇은 입술, 레게머리와 짧은 머리, 짙은 쌍꺼풀과 홑꺼풀 눈매가 모두 있었다. '까맣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피부색도 옅은 밤색에서부터 짙은 고동색까지 다양했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2016)를 두 번째 관람하던 날이었다. 이 장면은 극장 밖까지 따라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손을 씻는 중에 불쑥 치고 들어와 '흑인'이라는 두 글자에 두툼한 입술과 어두운 피부 같은 이미지를 일괄적으로 덧씌우고 있었던 나를 뒤흔들었다. 으레 '그러할 것'이라 생각하고 세세히 살펴보지 않은 것, 모르고 있었음에도 알려 하지 않은 것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문라이트〉, 〈셀마〉 등 차별없는 사회를 갈망하는 영화들.

그러고 보니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셀마>(2014)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 중 한 곡인 'Glory' 퍼포먼스 무대를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를 시상식장으로 옮겨온 존 레전드와 커먼의 무대는 동료 배우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마틴 루서 킹을 연기한 데이비드 오예로워의 눈물이 화면에 잡혔을 때 마치 현장에 함께 있는 것처럼 눈물이 왈칵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그의 눈물은 내 것과 결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의 소재가 된 '셀마-몽고메리 행진'은 흑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려고 시작된 비폭력행진이다. 백인 우월주의자와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한 비극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영화 <셀마>는 이날의 행진을 최대한 담담하게 그려낸다. 관객은 2시간 동안 킹 목사와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낸 저항의 의미를 진중하면서도 강렬하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재현한 시상식 무대가 전하는 감정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1965년 그날의 행진 이후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지금, 여기'에서 영화와 사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매체는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동시에 관객의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최근 이러한 '사회적 기능'에 충실한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북미 개봉과 함께 박스 오피스 최정상을 차지했던 <히든 피겨스>(2016)는 <문라이트>와 함께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검은 돌풍'을 일으켰다. 인종과 성차별에 맞서 승리했던 여성들의 경험을 관객들과 유쾌하게 나누며 국내에서도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프랑스에 이주한 콩고 출신 가족의 좌충우돌 정착기를 그린 <아프리칸 닥터>(2016)도 유쾌한 상황 속에서 편견으로 말미암은 냉대를 뼈 있게 그려내고 있다. 반면 제프 니콜스 감독은 <러빙>(2016)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차별과 편견에 대항한 실존 인물을 그려냈다. 주인공인 러빙 부부는 타 인종 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던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1958년 추방당했다. 영화는 부부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자 미국 헌법에 맞섰던 10년 세월을 따라간다. 치열한 법정싸움과 인권 운동이 아닌 러빙 부부의 사랑에 집중한다.

흑인영화의 시작에 오스카 미쇼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프리카-아메리칸의 의식을 고양하고 인종차별을 근절하고자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했다.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과제 중 하나는 유색인종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말했던 미쇼는 코미디, 웨스턴, 로맨스 등 3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중 <우리 문 앞에서>(1920)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최초 흑인 감독 영화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할리우드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을 언급하고 인권과 평등을 외친 게 10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많은 흑인 감독과 배우가 차별에 대한 역사적 사실, 인물을 영화로 제작하고, 영화산업 안에서 평등을 보장받고자 치열하게 부딪쳐 왔다. 그 덕분에 다른 시선 없이 흑인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문라이트> 같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반두비>(2009)나 <방가?방가!>(2010) 같은 작품은 드물고 오히려 중국인이나 조선족 등 '타자'에 대한 폭력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작품이 많아졌다. 모든 사람은 인종이나 피부색, 성별과 언어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세계인권선언 2조를 괜히 읊조려 보는 봄이다. /조정주(진주시민미디어센터)

본 지면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