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0) 의령…자굴산과 한우산
의령 최고봉 자굴산 조망 뛰어나
신록 싱그럽고 야생화 아름다워
한우산, 수풀 울창하고 계곡 깊어
철쭉제 개최…황금빛 노을 일품

의령은 남강을 끼고 있다. 강변 비옥한 땅에서는 수박, 파프리카, 구아바, 참외 등의 특산물이 생산돼 토요애라는 브랜드로 판매되면서 명성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의령 하면 으레 강과 평야의 지역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나 의령은 높은 산은 적지만 생각보다 산이 많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자굴산( ·897m)과 한우산(寒雨山·836m)은 의령을 대표하는 산이라 하겠다. 외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꼭 가봐야 할 산으로 꼽힌다. 의령에 살거나 태어난 사람에게는 더 특별한 곳이다. 의령의 지붕이자 삶의 터전이라는 물리적인 배경을 넘어 의령인의 기상과 심성이 발원한 심리적인 근원으로 여기는 곳이다.

◇경남 명산 갤러리 = 자굴산은 의령읍 북서쪽 칠곡면과 가례면과 대의면에 걸쳐 있는 의령 최고봉이다. 자굴산을 꾸미는 말에는 진산, 주산, 명산, 영산 등 산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가 다 동원된다. 합천군 쪽에서 보면 병풍을 두른 듯 경사가 가파르지만 의령 쪽에서 보면 산세가 완만해 친근한 느낌이다. 이런 까닭에 산 아래서 보면 수식이 과장됐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하나 정상에서 호흡을 가다듬을 때쯤이면 성급한 판단이자 선입견임을 깨닫게 된다. 주변에 견줄 만한 높은 산이 없어 시원한 전망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말 그대로 반전 있는 산이다.

지리산 천왕봉, 황매산, 덕유산, 가야산, 비슬산, 화왕산, 영취산, 무학산, 광려산, 여항산, 방어산, 망운산, 금오산이 시계방향으로 360도 쫙 펼쳐진다. 도내 유명 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인 셈이다.

자굴산 명경대에서 바라본 풍경. 시원한 조 망 아래 칠곡면 방향으로 흘러내린 자굴산 자락의 신록이 눈부시다./유은상 기자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난 청년 남명 조식도 자굴산 전망에 반해 수시로 올라 지리산을 가슴에 품었다 한다. 금지샘 쪽에 있는 명경대는 선생이 전망을 감상했던 곳이다.

자굴산 이름 또한 뛰어난 조망과 연관돼 있다. 자굴산 지명은 '성문 위에 높게 설치된 망루 모양으로 우뚝 선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자굴산은 그동안 도굴산이나 사굴산으로도 불리면서 혼란을 줬다. 옥편이 원인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작은 옥편에서는 자( )의 음을 '도'와 '사' 두 가지로만 풀이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의령문화원 향토사연구회는 이를 바로잡고자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또 이 계절에 자굴산을 오르게 되면 전망 외에도 곳곳에 핀 야생화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더 남쪽 더 낮은 곳에서는 이미 철 지나 버린 진달래 군락이 정상 바로 아래에서 산객을 반긴다. 보라색 얼레지, 노랑 민들레, 흰색 제비꽃도 각자 군락을 이루고 아름답게 피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계절의 주인공은 신록이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작은 잎들의 연두색 하모니가 눈을 싱그럽게 하고 호흡을 상쾌하게 만든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모든 구석구석 하나하나 씻어낸다.' 이양하 선생 수필 <신록예찬>의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신록은 자굴산이 아니라도 아름답지만 자굴산이어서 더 빛나 보였다.

◇찬비가 내리는 산 = 한우산은 궁류면 벽계리에 있는 산으로 자굴산에서 맥이 이어진다. 산세가 웅장하고 수풀이 울창하며 특히 계곡이 깊다. 이 때문에 한여름에도 차가운 비가 내린다고 해 찰비산(찬비산)이라고 불렸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냉정산(冷井山)'으로 기록되기도 했지만 나중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찰 한(寒)과 비 우(雨)로 바뀌었다.

3㎞ 찰비계곡에는 소와 아기자기한 폭포가 많다. 이곳은 옛날 한 백정이 신분을 속이고 딸을 양반집에 시집 보냈다가 들통나 파혼당해 쫓겨오게 되자 화를 못 참고 딸과 가마를 물에 밀어 넣고 자신도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후 곳곳에 소가 생겨났는데 신부가 빠진 자리는 '각시소', 장롱과 가마가 빠진 곳은 '농소'와 '가매소'가 되었다고 한다.

계곡 아래에는 야영장 등을 갖춘 벽계관광지가 만들어지면서 여름철 더위를 식히려 계곡을 찾는 사람들 외에도 사시사철 관광객 발길이 이어진다.

한우산 정상 주변에는 진달래와 철쭉 군락이 형성돼 있고 임도에는 벚나무와 개나리 가로수가 띠를 잊고 있다. 꽃들은 바통을 이어가며 산 정상에 봄을 물들인다. 매년 4월 말이나 5월 초에는 철쭉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오는 30일로 예정돼 있다. 가을이면 찰비계곡을 물들이는 단풍과 산 정상 억새 물결도 일품이다.

최근 한우산은 일몰과 야경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한우산의 밤은 다른 산의 낮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상에 서면 서쪽인 합천 방향으로 시야가 열려 있다. 그 널찍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황금빛 노을은 울림 또한 크다. 왼쪽 천왕봉에서 오른쪽 황매산으로 큰 선이 연결되고 그 앞뒤로 늘어선 산그리메가 계단을 이루며 깊이를 더한다.

해가 지고 나면 그 공간은 온통 별빛이 메운다. 인공조명으로 가득한 도심과 멀어 이곳의 별은 더 선명하다. 백패킹 야영지, 야경과 별 사진 촬영지로도 꽤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산 아래 가례면 방향에서 궁류면으로 도로가 잘 연결돼 있어 산길 드라이브와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려는 이들도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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